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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 “술“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더 자세히 파고들면 술을 마신 후에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참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 하는데, 어떤 부분들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성인이 되면 술에 관해서 즐거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겁니다. 이는 성인이 되기 전 청년 때에도 숱하게 드는 유혹과 그 호기심 넘치는 그 시기를 참고 견디고 나서, 대학에 입학 하게 된다는 것, 졸업 후 시작되는 회사생활과 회식문화 등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음주문화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술에 관하여 법적으로 제한을 두는 나라입니다. 안 그래도 뭐든 궁금하고 호기심 넘치는 청소년의 시기에 법으로 제재 하고, 학교에서나 사회 분위기로나 집에서도 철저하고 엄격하게 금하고 교육하며 관리를 통해 마시질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제한을 두는지 여러 이유 중에, 제가 가장 중요히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라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하고 있는 시기에 무분별하게 술을 마시게 된다면, 안 그래도 판단력과 절제력이 없는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제한 없이 교육도 없이 무분별한 상태로 음주하는 것을 개방하게 된다면, 비행청소년, 절도, 가출, 폭력성, 성범죄 등 이런 심각하게 그릇된 행동들을 안 그래도 자행되는 상황에서, 술을 마심으로써 흐려지는 판단력과 절제하기 너무도 힘들어지는 정신상태가 되면서 쉽게 범죄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20살, 대학생, 회사생활 초년생, 직장회식, 기타 한국 음주문화에 대해 무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부어라, 마셔라’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이것만 없어져도 그래도 꽤나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 합니다. 우리는 먼 과거에 치욕스러웠던 ‘일제강점기’가 해방되고 그 고생했던 기억을 잊어버리자 라며 ‘부어라, 마셔라’와 같은 술 문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보넨카이(망년회)’ 라고 해서 1차, 2차, 3차를 가면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는 문화가 현재까지고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생긴 술 문화가 일본의 잔재인 아이러니함 인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일제강점기의 치욕스러운 잔재라는 것만으로 큰 문제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것도 문제가 될 순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고주망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는 성인이신 분들 중에 고주망태가 된 사람을 보신 분도 있고, 직접 되어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술이란 가장먼저 사람의 논리적인 부분을 억제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올바른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평상시와 다르게 말도 함부로 하게 되고, 행동도 거침없어지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가 지나치면 결국엔 범죄와 연결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근데 중요한 건 ‘고주망태’의 상태에선 ‘기억’조차 삭제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전 날에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카톡이나 전화로 ‘전 날에 뭐가 어쨌더라~’, ‘어떻게 그럴수 있냐~’ 와 같은 의문스러운 연락이 오게 되면, 가뜩이나 속도 안 좋은데 멘탈도 나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건 그나마도 괜찮은 상황이라 생각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 눈을 떴는데 경찰서라던지, 길에서 빨개 벗고 자고 있다거나, 병원에 누워 있다면 과연 그런 상황을 감당이나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자기 스스로만 피해보거나 한 것이라면 조금은 괜찮을 것입니다. 스스로가 자책하고 후에 책임지고 감당해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인이 조금이라도 관여되어 있다면 말은 달라집니다. 어디 다치게라도 하면 책임지고 감당해야할 범위가 너무 커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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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술 강요 행위’ 때문입니다. 첫 번째와 많이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대학생 때도 조금씩 존재하지만 보통은 직장생활 하는 중에 일어나는 행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강요 행위는 자기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부서의 단합을 위해서 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먹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라면 사회생활 하는데 술 한 잔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며 강요하기도 합니다.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애초에 ‘강요’를 하는 위치라면 무조건 ‘상급자’, ‘갑’과 같은 상하관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밑에 사람인 우리에겐 거부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그런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미 가정하고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정말 큰 용기를 내서 ‘거부’하는 우리에게, ‘상급자’, 혹은 ‘갑’인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 때는 더 심했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와 같은 말로 찍어 누르려 합니다.

 

지금 시대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생활에 있어서 업무적인 부분과 예의범절과 같은 부분들로 가르치거나 충고 해 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부분들은 당연히 필요하고 받아들여야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그런 것을 ‘꼰대’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문제가 있는 ‘하급자’이자 ‘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술 강요 행위’는 회사생활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자기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반발심만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서의 단합이라는 것 역시 타당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물론 부서 단합으로써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간단하게 식사하거나, 영화나 연극관람과 같은 단합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회식자리에서 ‘부어라, 마셔라’, ‘너가 뭔데 술을 안먹냐’와 같은 강요행위가 도대체 어떻게 부서의 단합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회사의 애사심이 뚝 떨어지고 부서 내의 갈등만 조장되리라 생각 합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애초에 상급자와 마시는 술자리, 회식자리는 구시대적 감정노동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밑에 직원들 모두 밥 먹을 돈, 술 먹을 돈 있고, 친구도 있고, 일 끝나고 할 취미생활도 있고, 아니면 업무시간 다 채우고 피곤해서 집에서 쉴 권리도 있습니다.

 

그런 생활을 ‘상급자’라는 이유로 부서 단합과 같은 핑계꺼리로 강요하는 것은 심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술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술을 먹으면 크나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런 악습들은 하루 빨리 청산 되 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병에 걸린 사람들, 술로 인해 죽을 뻔 했던 사람들에게 술을 강요하는 것이, ‘부어라, 마셔라’와 같은 음주 문화가 과연 올바른 것 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특히나 술로 인해 병에 걸렸거나 죽을 뻔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술 한 잔만 마셔도 기절하거나,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들은 애초에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몸에서 먹지 말라고 경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그런 사람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은 살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그 외에 종교적인 이유로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본 한국 음주문화에서 아주 특이하고 이상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를 대면, 그 사람이 외국인이거나 무슬림이라면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한국인이고 기독교인에겐 가차 없이 강요하기 마련입니다.

 

‘난 주일마다 교회 나가는데 술 마신다’, ‘나 아는 기독교인들 다 술 마시더라’와 같은 말로 강요하고 먹이려듭니다. 오히려 못 먹이면 큰일 날 것처럼 달라붙는 사람도 봤습니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저마다 신앙심 곧 믿음의 크기가 다르고, 그 신앙심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지켜야 되는 가치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살면서 지키며 살아가야 될 것이 많습니다. 아주 크게는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폭행하지 말고, 협박하지 말고.. 등등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들을 우리는 지킨다는 생각보단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밖에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여기서 ‘우리가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다 해도 되는 가‘를 따져봤을 때, 이 역시 크게 따져 봤을 때 그렇지 않다는 사람, 그래도 상관없다는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따져 봤을 때 ‘술을 마셔도 되는 기독교인’, ‘마시면 안 되는 기독교인’ 혹은 ‘먹고 싶지 않은데 직장상사의 강요로 억지로 먹는 기독교인’도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아는 기독교인들은..’ 혹은 ‘나는 교회 다니지만 먹는..’ 과 같은 말로 동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 아니오와 같은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셔도 된다, 마시면 안 된다, 먹기 싫지만 강요로 인해 억지로 먹는다와 같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밖에 운전해야 되는 사람, 임산부, 술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과 같은 이유도 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말이 참 길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예전부터 대한민국의 음주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술을 잘 먹지 않으면 무능력한 사람이 되거나, 따돌리고 죄인 취급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요새는 굳이 강요하지 않고, 적당하게 마시거나 먹기 싫은 사람들은 가만 두려는 모습들을 많이 보곤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과거의 악습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술이란 누군가에게 즐거움이자 삶의 낙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괴로움이자 삶의 고통인 것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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