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와 흑백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채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한 16세의 마르틴 외데고르가 마드리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처럼 보였지만, 평범한 십대는 아니었고, 오늘로부터 10년 전, 외데고르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350만 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430만 달러) 영입 선수로 소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노르웨이 고향 팀 스트룀스고세트에서 세계 축구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로 평가받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의 많은 빅클럽들과 경쟁에서 승리했던 날 이기도 합니다.구단의 홍보 책임자 옆에 앉은 외데고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1분 넘게 침묵을 지켰으며,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제공된 통역용 헤드폰을 착용해야..
김진규 본인은 사실 린가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전했습니다.일단 린가드 선수의 공백기가 너무 길었고, 당장은 영입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정도였는데, 그래도 네임밸류가 있고 EPL에 뛸 정도의 선수이니 만큼, 스카우트를 바로 파견해서 관찰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FC서울의 스카우트는 선수를 상당히 꼼꼼히 보는 편인데, 그럼에도 린가드를 보자마자 바로 단정지어서 영입해도 좋을 것 같다는 평가를 했습니다.훈련 프로그램을 짜서 린가드에게 시켜보았는데, 그걸 모두 수용하고 성실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스카우트가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후 스카우트가 단정지어서 영입하자고 말했습니다 (평소 이렇게 말하는 스 타일이 아님)이 말을 듣고 김진규는 영입을 추진하..
기술은 공을 1천번 튕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연습으로 가능하고, 그 기술은 서커스단에서 쓰일 수 있다. 기술은 원터치로, 정확한 속도로, 동료의 발까지 생각해 패스하는 것이다. 선수가 경기 중 공으로 저글링을 하면 수비수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얻게 된다. 팬들은 그가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선수는 서커스단에 가야 한다. 포지션마다 최상의 선수를 뽑아라, 그러면 강한 11명이 아니라 11명의 강한 하나가 될 것이다. 나의 팀에서 골키퍼는 첫 번째 공격수이고, 골잡이는 첫번째 수비수이다. 부자 클럽을 왜 못 깨는가? 나는 돈 가방이 골을 넣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항상 공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다시 공을 잡으면 유일하게 마크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였고, 기..
라리가에 영입된 모든 선수들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루이스 수아레즈처럼 되진 않았습니다. 영입 후 라 리가에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습니다. 스페인 리그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이며, 사랑받는 행선지들 중 하나이기 때문 입니다. 모든 선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기를 꿈꾸는데, 도약을 이루는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우 빠르게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다. 다음은 라 리가로 이적했지만 어떤 이유로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선수들의 목록이며, 라 리가의 영입 실패작들을 소개합니다. 데니우송당시 기록적인 이적료로 레알 베티스에 영입된 이 브라질리언 드리블러는 기껏해야 평범한 선수로 끝나게 됩니다. 데닐손은 1998년..
전 세계의 맨유 팬 여러분께, 이번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진심으로 몇 마디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시즌이 여러분에게 쉬운 시즌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받아 마땅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보여준 지원에 항상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팀의 주장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그 책임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은 제가 결코 가볍게 여기는 일이 아닙니다.이 클럽은 단순히 소셜 미디어에 멋진 인용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깊이 아끼는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올 기회를 받았던 때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4년 전 리스본의 우리 침실 옷장에서였습니다. 에이전트가 밤 10시쯤에 전화를 걸어왔는데, 당시 제 딸은 겨우 세 살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은 우리의 취침 시간이었습..
대한민국 축구선수였던 홍명보는 1990년 북한과의 통일축구대회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분단 이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북한에 방문하여 경기를 가진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북한 원정은 요즘에도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지만, 199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상, 당시에는 평양 원정을 치르기 전에, 안기부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도 무서웠겠지만, 당시 안기부의 명성 또한 대단하였으니, 홍명보는 안기부에서 교육 받았을때 머리끝이 쭈볏쭈볏 섰다고 회고하며, 안기부 직원은 선수들에게 도청에 유의할 것을 특별히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대표팀의 숙소는 고려호텔로 정해졌는데, 홍명보는 안기부에서 교육에도 불구하고, 도청에 대해 설마 그런일이 있을까 하여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이내 곧 그 직원의..
인터뷰 기자 : 김민재 선수가 최종적으로 나폴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 입니까? 김민재 선수 : 제가 나폴리를 선택한 이유는 구단과 감독이, 제게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것을 많이 느꼈고, 나폴리라는 팀이 제게 이적을 제안했을 때, 나폴리이기 때문에 별 다른 생각없이 선택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기자 : 김민재 선수가 생각하는 수비수 롤 모델은 누구 인가요? 김민재 선수 : 제가 롤모델로 삼은 외국인 수비수는 파리 생제르망 선수의 '세르히오 라모스' 입니다. 인터뷰 기자 : 입단 신고식으로 강남 스타일 부른 영상을 보았을 때, 구단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적응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 하나요? 김민재 선수 : 신고식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동료들이나 구단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