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5월 개인 비행기로 이동하는 도중에 앰버허드가 계속 언어폭력을 퍼부었고, 참다못한 조니 뎁은 비행기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화장실 바닥에서 잠들었습니다. 2014년 8월 조니 뎁은 진통제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고, 중독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본인 소유의 섬으로 이동하였고, 원래는 혼자 가려고 했으나 앰버 허드가 동행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조니는 심각한 금단증상 때문에, 24시간 내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상태였고 주기적으로 진정제를 투여받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앰버가 치료에 필요한 약물을 숨기는 등 치료를 방해했고, 그 결과 조니는 발작과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치료를 중단하고 원래 계획보다 빨리 LA로 돌아오게 됩니다. 20..

2001년 세계에서 최초로 네덜란드 국가는 동성혼을 허용 합니다. 그러다보니 근 2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많은 데이터가 쌓이게 됩니다. 20년간 남녀 이혼율, 동성 부부 이혼율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남-여 부부 이혼율 -> 15.75%남-남 부부 이혼율 -> 13.70% 여-여 부부 이혼율 -> 25.95% 레즈비언 부부 이혼율이 대략 10% 정도 더 높은 것으로 확인 되었고,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한데, 관계에 있어 역할이 달라야 하는데, 남-여는 태생부터 다르게 태어났기에 이런 분담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나눌수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여-여 커플은 역할 분담을 잠시나마 나눌 수 있을진 몰라도, 그것이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 입니다. 이것은 태생부터 같게 태어났고, 삶을 ..

여자들이 이혼 후에 후회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이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이혼전문 변호사는 한 사례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남편이 너무도 가정에 소홀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아내는 남편이 새벽까지 일하다 들어오고 가정에는 소흘했다며, 이혼을 원했고 결국 부부는 합의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남편은 3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이혼 후 재산분할 과정에서 그 중 하나를 아내에게 양도하여, 한 개의 가게는 아내 분이 맡아서 운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가게 하나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가게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던 것 입니다. 자기는 집에서 애보고 가사노동 하는 게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막상 직접 해보니 가게 일이 훨씬 힘든 것 이었습니다. 남편은 심..

이 글을 보는 결혼한 사람들은 절대로 바람피지 마세요. 그리고 처녀 총각들도 기혼인 남녀와 바람피지 마시구요. 너도나도 섹스로 참회하는데 뭐 자랑일까요.. 진심으로 참회를 해해야지 간통죄 폐지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와 같은 개 거지같은 법을 만든, 똑똑하신 윗대가리들 덕에, 저 같은 무식한 사람의 가정은 그저 파탄이 나는 겁니다. 10년 전 마누라와 저는 30대 부부에 딸 하나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제가 다니던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의 거래처 직원이었고 저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저는 전문대를 나왔고, 그저 와이프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따라다녔고 와이프는 4년대 졸업에 얼굴도 이쁘고, 세련되고 몸매도 섹시했습니다. 말도 사근사근하게 잘하고 상냥해서, 대략 9개월 가까이 ..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곤 합니다. 그런 글을 읽을 때 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렵고,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곤 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부류중에 하나 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 역시도 언젠가 기회가 될때 이야기 한 번 써 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한 번 써 보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내용이 많고, 딱히 말 할만한 곳도 없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나마 몇자 끄적여 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신 적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의 학창시절은 언제나 가난했었다고 하더군요 할아버지가 무슨 맘으로 일을 시작하셔도, 한 달을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일을 안하셨습니다. 그래서 할머..

솔직히 제 어머니 이지만, 저를 많이 힘들게 했고, 그 만큼 저 역시도 싫었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지라, 더 이상은 같이 살 수 없는 판단이 서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아버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았고, 어머니도 아버지가 자기를 많이 때렸기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하셨기도 했고,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화를 엄청 내면서 소리치고 물건 다 깨 부수는 기억이 있었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진 기억나질 않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분위기도 너무 무섭고 싫었고, 어머니는 이혼 후에 절대로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자기를 또 때리러 올 거라면서 그런식으로 이야기 했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를 멀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릴 땐 굉장히 무서우면서 한편으로는 밉기도 했고..

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 땐 왜 그랬는지도 몰랐고, 왜 어머니를 따라가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저 중학생 때, 어머니 모르게 연락하셔서, 그때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아버지께서 훨씬 더 잘 버시고, 잘 살고 계셨는데, 왜 나는 어머니랑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왜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 너무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어머니는 집에 잘 안계셨습니다. 제가 10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 집에 냅두고 아는 지인들과 놀러 다니기 바쁘셨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나 다른 친척들에게 맡기고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밥 2~3줄 대충 사 놓고, 컵라면 박스로 사..

올해로 이혼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굉장히 추운데, 일단 온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소음 조차 없으며, 저 혼자 살기엔 쓸데없이 큰 집인지라, 보일러를 켜기도 뭐해서, 집에 오자마자 안방에 있는 히터와, 침대 위에 온수매트를 켠 채로 적막한 집에 속상하게 느껴져 잔잔한 음악을 틉니다. 뜨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서 바디로션도 바르고, 아무도 맡아주는 이 없지만 일부로 향기나는 스킨, 로션을 큼지막히 바르는데, 등에 닿지도 않는 손으로 인해, 잘 발리지 않아 외로움이 문득 찾아 오기도 하네요 음악을 들으면서 다이어리에 하루를 정리 하는데, 유튜브를 보면서 일부로 소리를 내면서 웃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화상으로 영어회화 수업도 가끔씩 하곤 합니다. 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