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바지와 흑백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채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한 16세의 마르틴 외데고르가 마드리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처럼 보였지만, 평범한 십대는 아니었고, 오늘로부터 10년 전, 외데고르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350만 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430만 달러) 영입 선수로 소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노르웨이 고향 팀 스트룀스고세트에서 세계 축구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로 평가받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의 많은 빅클럽들과 경쟁에서 승리했던 날 이기도 합니다.구단의 홍보 책임자 옆에 앉은 외데고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1분 넘게 침묵을 지켰으며,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제공된 통역용 헤드폰을 착용해야..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챔스 결승에서 두번이나 상대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 하프라인에서 부터 상대가 공을 잡으면 3초 내로 뺏어오는, 3초룰 이라는 전술을 사용했을 때, 그 체력이 어떻게 경기 내내 유지되는지가 궁금하다고 합니다. 2008년에 은퇴를 고민하고 있을 당시, 무리뉴한테 은퇴 예정이라 말했더니, "은퇴하지 마세요 감독님, 감독님이 계셔서 제가 이 일을 계속 할수있는거 라구요 " 라고 말했다 합니다. 본인 생각으론 무리뉴가 선수들 장악하는 능력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퍼거슨 감독이 맨유 시절에 딱 3번 경기를 지휘 하지 못했는데, 1. 부인의 언니가 사망했을 때2. 아들의 결혼식 날3. 데헤아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스페인으로 갔을 때 퍼거슨은 박지성, 에브라, 테베즈 트리오를 '좋은..

올해 2월 즈음, 본인이 처음 후보로 거론되는 시점부터, 강력하게 대표팀 감독으로 가길 원했으나,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서 이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최종 후보자였던 제시 마치와 대표팀간 계약이 결렬되며, 다시 본인이 후보로 거론되자 굉장히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해성 위원장과 전강위가 국대 감독 최종 후보자로 추천하겠으니,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6월 달 제의를 이미 구두로 승락하였습니다. 축구계와 울산 선수단에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이, 6월 초부터 파다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이후 정몽규 회장이 홍명보는 이미 월드컵에서 실패한 감독이고, 지도력 또한 의심된다며 선정을 최종 거절하자 이에 극대노 하게 됩니다. 근래 협회와 정몽규를 저격하고 맹비난했던..

2010년 월드컵 때 정해성 위원장(당시 코치)하고 인연이 있었는데, 연락이 오게 되어 전력강화위원장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합니다.르나르 감독의 경우, 줌미팅 때 언론에 비쳐진 것 만큼의 의욕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시안컵을 봤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만나봐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날짜를 잡았는데, 이틀전에 장소 옮겨달라고 해서 오케이 했는데도, 이후에 또 바꾸자고 하길래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최종 결렬 되었습니다. 각 위원마다 세 명의 후보군 감독을 추천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한 명 내지는 거의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박주호 위원장 본인은, 아모림 감독, 제시 마쉬 감독, 세아브라 감독 등등을 추천했고, 제시 마쉬도 다른 ..

기술은 공을 1천번 튕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연습으로 가능하고, 그 기술은 서커스단에서 쓰일 수 있다. 기술은 원터치로, 정확한 속도로, 동료의 발까지 생각해 패스하는 것이다. 선수가 경기 중 공으로 저글링을 하면 수비수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얻게 된다. 팬들은 그가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선수는 서커스단에 가야 한다. 포지션마다 최상의 선수를 뽑아라, 그러면 강한 11명이 아니라 11명의 강한 하나가 될 것이다. 나의 팀에서 골키퍼는 첫 번째 공격수이고, 골잡이는 첫번째 수비수이다. 부자 클럽을 왜 못 깨는가? 나는 돈 가방이 골을 넣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항상 공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다시 공을 잡으면 유일하게 마크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였고, 기..

라리가에 영입된 모든 선수들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루이스 수아레즈처럼 되진 않았습니다. 영입 후 라 리가에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습니다. 스페인 리그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이며, 사랑받는 행선지들 중 하나이기 때문 입니다. 모든 선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기를 꿈꾸는데, 도약을 이루는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우 빠르게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다. 다음은 라 리가로 이적했지만 어떤 이유로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선수들의 목록이며, 라 리가의 영입 실패작들을 소개합니다. 데니우송당시 기록적인 이적료로 레알 베티스에 영입된 이 브라질리언 드리블러는 기껏해야 평범한 선수로 끝나게 됩니다. 데닐손은 1998년..

1998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을 5:0으로 박살낸 히딩크 감독, 이번 글에서는 히딩크가 그 경기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화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히딩크는 한국과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로날드 쿠만(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코치)에게 먼저 한국팀에 대한 정보의 수집을 지시하게 됩니다. 쿠만은 온갖 채널을 동원해서 동원하여 한국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미디어도 약했고, 인터넷 같은 것도 거의 활용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알려진게 없었다고 푸념하면서, 자기 멋대로 판단하여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한국팀은 투지는 있지만 신통치 않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히딩크는 여기에 더해 다음과 같이 최종적으로 한국팀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고 합니다. 기술적으론 잘하지만 조..

대한민국 축구선수였던 홍명보는 1990년 북한과의 통일축구대회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분단 이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북한에 방문하여 경기를 가진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북한 원정은 요즘에도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지만, 199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상, 당시에는 평양 원정을 치르기 전에, 안기부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도 무서웠겠지만, 당시 안기부의 명성 또한 대단하였으니, 홍명보는 안기부에서 교육 받았을때 머리끝이 쭈볏쭈볏 섰다고 회고하며, 안기부 직원은 선수들에게 도청에 유의할 것을 특별히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대표팀의 숙소는 고려호텔로 정해졌는데, 홍명보는 안기부에서 교육에도 불구하고, 도청에 대해 설마 그런일이 있을까 하여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이내 곧 그 직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