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러시아에서 개의 목을 자른 뒤, 로봇을 만들고자 했던 계획이 있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 괴랄한 프로젝트는, 그 당시에 아주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사진 중간에 모자이크 된 개의 머리와 몸통이 실제로 실험했음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저 애꿎은 강아지들만 엄청 희생된 채로 이 프로젝트는 실패하게 됩니다. 만약에 성공 했더라면 최종 목표는 아마 인간의 머리 였을 것이며.. 당시 시대상으로 충분히 연구개발 했을 무서운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영구기관은 간단히 말해서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지 않은 채 영원토록 '일' 을 할수있는 기관이라는 것 인데... 이는 우주가 종말할때까지 깨질일 없는 기본적인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이미 물리학계에서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판명난 논제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영구기관이 존재한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대학교의 물리학과나 기계공학과 교수들의 이야기로는, 이러한 영구기관을 주장하는 자들이 가끔씩 찾아온다고 하며, 말도 안되는 설명을 듣고 나면 교수들은 그냥 조용히 돌려보내기 바쁠 만큼 홰괘망측한 이론에 학을 떼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 발명가가 해당 기기의 해석을 할 때 물리적으로 무언가 잘못 계산한 경우가 절대 다수이며, 그리고 나머지는 기본적인 해석조차 안 되는 사..

이탈리아의 공군 원수 이탈로 발보(Italo Balbo)는 비행 중 이탈리아군에 의해 격추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치인이었던 이탈로 발보 (Italo Balbo)는 친구였던 무솔리니와의 갈등으로 리비아 총독으로 좌천되게 됩니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이 프랑스 침공을 개시한 뒤, 6월이 되자 무솔리니는 남프랑스의 영토를 목적으로 프랑스 남부를 공격하게 됩니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상황은 알제리-튀니지가 프랑스의 영토였고, 리비아 지역이 이탈리아령이었기 때문에 두 나라 간 전쟁이 벌어진다면 북아프리카에서도 전투가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리비아 총독 겸 공군 원수이던 이탈로 발보는 리비아에 있는 이탈리아군의 정비를 단단하기 위해 경계 비행을 실시했고, 하지만... 리비..

대략 10년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낚시를 많이 좋아하던 선배의 이야기가 떠 올라서 몇자 적어보려 합니다. 제가 당시에 근무하던 곳은 여천공단에 위치한 삼성계열사로 합성수지 원료를 주로 생산하던 곳으로, 지금은 롯데 첨단소재로 바뀐 곳 입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알게된 한 선배의 이야기 입니다 그 선배는 낚시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으로, 그 곳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여름철에는 꼬박꼬박 밤 낚시를 즐겨 다니곤 했습니다. 다른 부서에 근무하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배의 경우 3교대 근무를 하면서.이브닝(저녁 11시 퇴근) 근무를 마칠 때면 퇴근과 동시에 밤낚시를 즐겨하던 그런 선배였습니다. 여수 만성리 터널과 레일바이크 타는곳 사이에 보면 위령탑이 놓여 있는 곳이 있고 그 장소가 조금은 공간이..

하시마섬은 74년 광산의 폐광이 결정, 섬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 및 인부들이 모두 섬을 떠나면서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닿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제한적으로나마 관광객의 상륙 및 견학이 가능해지면서 부터이며,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2009년 이전에도 일부 사람들의 출입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나가사키 시의 허가를 받은 일부 제한된 인원이거나 혹은 낚시꾼들, 섬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몰래 잠입한 이들 정도였습니다. 학교와 병원은 섬의 북쪽 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먼저 학교의 경우 소중학교라고 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층을 달리하여 한 건물을 같이 사용했습니다. 초기에는 목재였으나 1958년 7층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되어 1-..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중 또라자족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슬라웨시(인니사람들에게는 미녀가 많은 섬이라고 불리는 족)섬의 원주민들 중 하나로, 본래 높은 산지에 사는 산악민족 이었습니다.물론 현대에는 평지로 내려와서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인구는 대략 110만명 정도이고, 대부분의 인구는 기독교도 이고, 일부 무슬림과 전통종교를 가진 사람들 또한 있습니다.본래 애니미즘을 신봉하던 또라자 사람들은 네덜란드 선교사들의 주 타켓이 되기는 했지만, 1950년대 까지는 기독교 인구는 전체 또라자인들 중 10%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이 대규모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에 일로, 거기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세속국가 건설에 반대(인도네시아 국가 정체 자체를 부정하였음)하..

우리 현대인들은 고대 역사에 대해 아는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생각하는 것 상당 부분이 불확실 합니다. 물론 그럴 만도 한 것이, 기록이 있는 역사적 사건들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학계의 정론도 10년 단위로 바뀌는 판에 기록도 없는 시대의 역사가 불확실할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가장 오래된 평화조약의 기록이 남아있는 카데시 전투의 경우, "우리 이집트 군이 습격을 당했다, 근데 우리가 이겼다!" 라는 말도 안되는 수준의 생략이 있을 정도 입니다. 근동의 경우는 그나마 기록이라도 있지만, 이 시기에 독자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진 문명들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절의 고조선도 비슷한 경우 입니다. 북, 중앙 유럽의 청동기 문명 또한 마찬가지 인데, 이 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로, 특이한 점은 전쟁에 환장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이 당시 시대상으로 왕이 전쟁군주인 것이 그리 이상한게 아니지만, 제임스 2세가 특이한 건 대포와 같은 큰 무기에 집착하는 왕이었던 것도 있습니다.얼마나 대포를 선호했는가 하면, 그 비싼 대포를 엄청나게 구매하는 바람에 국가가 휘청이기 직전까지 갈 정도였고, 전쟁 준비를 할 때마다 항상 그 많은 대포를 끌고 다니면서, 사격 훈련할 때 항상 바로 옆에서 들여다 보면서 히죽 히죽 웃었다고 할 정도 입니다.아무튼 제임스 2세는 그렇게 대포에 환장하던 어느날 '록 스버러 성 공성전'에 참가를 하게 됩니다. 쾅쾅 소리를 내면서 성벽을 박살내는 대포를 보면서 , 그 날도 제임스2세는 대포 옆에 바짝 붙어서는 느끼고 그 순간...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