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부터 말하면, 돈 문제가 크기 때문입니다. 우유가 남아서 우유를 그냥 버린다고, 낙농업자들 비난하기 바쁘지만, 결론적으로 그 행위조차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 돌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버리는 이유도 돈 문제가 크긴 한데, 생산원가(소의 가격 감가상각+사료+축사투자비용+축사유지보수비용+인건비+기타등등)가 판매가보다 높으면, 결국 손해라는 결론이 지어집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면 팔때마다 적자라는 계산이 나오게 되지요 (미끼상품같이 다른데서 이득을 보는 구조) 동네에 봄에 양배추를 심는 아저씨가 있는데, 어느 해에는 작업을 조금 하다가 그냥 다 밭을 갈아엎어 버렸는데, 그 이유는 마찬가지로 돈이 되질 않으니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농사짓고, 작업해서 팔아봐야 작업비도 안나오는데 어느 ..

1. 잔다르크는 정말 신의 계시를 받았는가에 대해 1429년 프랑스는 잉글랜드와 100년 전쟁으로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쳐해 있었고, 프랑스 왕들은 대대적으로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왕이 되었는데, 잉글랜드에게 랭스를 빼앗겨 샤를 7세는 대관식도 올리지 못해 왕세자 신분에 머물렀으며, 파리 또한 진작 함락당한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 남부지역만 겨우 유지하고 있던중에, 한 양치기 소녀가 샤를을 찾아오니, 그녀가 후에 잔 다르크가 불리게 되는 여인이었습니다. 샤를은 처음엔 잔을 의심하여 자신의 시종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고 자신은 신하들 무리에 섞여있었는데, 그럼에도 초면인 잔다르크가 시종이 아니라 자신에게 오더니 왕세자라고 예를 표했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신의 계시를 받아 프랑스를 구하..

해방에 따른 숙청은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정치에 비유되며, 당시의 잔혹성은 전시의 적에 의한 것만큼이나 과도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한 사례로서 부역자인 남편이 살해되고, 이어 부인이 강간당한 채 자신의 11살된 아들과 함께 살해 되기도 합니다. 묶인 사람이 자신의 딸이 12번이나 윤간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또 다른 경우 아이는 내팽개쳐진 채 그 어머니가 강간당할때고 있고, 고문이 처단 직전에 따랐습니다. 부역 혐의자의 눈을 찌르고, 생식기가 잘리고, 불타는 침대 위에 눕혀졌습니다. 한 신부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야 했고, 생식기를 총격한 뒤 생매장 되었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가슴이 도려내졌습니다. 부역자들은 맨발로 깨진 유리 위를 걸어야 했고, 여성 부역자는 체포자에게 봉사..

수메르라는 이름의 유래는 남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수메리아 라는 지역에 수메르인들의 정착한 것에서부터 유래 됩니다. 이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 이미 비교적 크고 복잡한 도시 공동체들을 구성하게 됩니다. 수메르 도시들의 일반적 특성은 여러가지 인데, 도시는 인구가 밀집된 성벽 내의 중심지, 계곡을 둘러싼 주변 농업지역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성벽 안에는 신전, 궁전, 일반 평민의 가옥이 있으며, 뚝, 운하, 저수지 등도 조성되었으며, 주변 농업지역에서는 농민들이 거주하였습니다. 이들이 정착한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메소포타미아라는 지명은 meso(중간, 사이)와 potam(하천)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두 강 사이의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평양에 앞바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왜 소정방의 평양에 상륙하고 평양이 요새라고 했는지, 또 지금 보다 넓은 평야와 더 많은 요하 부근의 강 줄기가 요하와 대릉하 사이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 입니다. 금관가야에 북해 존재 합니다. (김해 윗바다 ~ 양산 앞바다) 왜 가야가 무역의 중심이였는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주 앞바다, 익산 앞바다 존재 이유 입니다. 왜 백제 멸망 당시에 흥수가 대전아래 금산과 장항에서 막으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태조 왕건이 어떻게 나주에 세력을 투사했는지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즘 학계에서 핫한 주제이고 또 이것저것 변경될 수 있으며, 지도도 보면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바로 동성왕 재위 기간에 발생했다던, 북위와 백제 간의 전쟁 입니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전쟁은 484년, 488년, 490년 총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첫 번째 전투에서는 북위가 백제를 격파한 반면, 나머지 전투에서는 북위가 백제에게 크게 패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백제와 북위 간의 전쟁은 베일에 쌓여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건데,. 그래서 과연 이 두 나라 간에 전쟁이 발생 했는지 의문을 품는 시각도 많습니다. 우선 북위가 백제를 침공한 원인 조차도 불분명하고, 이 두 국가가 외교적으로 마찰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도에서도 보다시피 애초에 지정학적으로도 북위와 백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해상으로는 황해가, 육상으로는 고구려가 서로의 진로를 막고 있었던 만큼, 영토 분쟁을 하..

1. 나폴레옹은 키가 작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키 작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열등의식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키는 ‘무려’ 1m 71㎝나 되었고,. 프랑스대혁명 시대 평균 키는 167㎝ 정도 였습니다. ‘우월한 기럭지(길이)’는 아니었지만 평균 이상은 분명했습니다. 2. 아인슈타인은 수학에서 낙제하지 않았습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의 『아인슈타인의 우주』에는 아인슈타인이 “나는 수학에서 낙제하지 않았다. 15세 이전에 미적분을 마스터 했다”고 한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17세 때 대수와 기하학에서 최고 등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3. 추수감사절은 메이플라워호 청교도들이 시작한 게 아닙니다. 17세기 초 청교도들이 종교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