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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Eastern Front)은, 2차 세계대전중 독일-소련 간에 일어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입니다.

1941년 6월 22일, 독-소간의 불가침조약을 히틀러가 일방적으로 깨버리고,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하여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소련군은 난리도 아니었는데, 탱크를 앞세워 진격하는 독일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만에 모스크바까지 밀려나게 됩니다.


독일군 약 380만명이 동원된 대규모 작전이었고, 수도까지 밀려난 소련은 약 270만의 소련군을 전선으로 투입합니다.

 

 

 

당시 독일과 소련이라는 엄청난 힘을가진 강대국이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양측은 엄청난 숫자의 군대를 동원하게 되는데, 전쟁동안 소련은 약 3400만명의 군인을 동원하였고, 독일은 약 1800만명의 군인을 동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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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당시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끔찍하게 혐오하였기에, 소련의 파멸 그 자체를 원했고, 그렇게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인종청소를 더불어 눈에 보이는 모든 소련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나치는 폴란드 학살, 체코 학살, 벨라루스 학살, 집시 대 학살, 소련포로 학살등 엄청나게 많은 전쟁 범죄를 일으키고 소련인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이렇게 독-소전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점점 보복전의 양상을 띄게 됩니다.

 
 
 
 
 
 
독일군은 점령지에서 주민들과 포로들의 학살은 물론 강간과 고문도 하였고, 지휘부에서는 이것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독일병사들은 ‘NPT’(no prisoner to be taken)라는 명령 즉 ‘소령 이하는 잡을 필요가 없다’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데, 소련군 포로 50%이상을 학살했고, 부상병들을 얼려죽이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악행은 고스란히 돌아오게 됩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잡힌 독일군 포로 9만명 중 8만 4천명이 죽었고, 소련의 대대적인 역습인 바그라티온 작전에선 미처 후퇴하지 못했거나 부상당하여 병원으로 이송된 독일 병사들은, 소련군들에게 구타, 고문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결국 양측의 피해를 살펴보면...

 
 
 

 

독일군, 투입 된 병력 1800만명, 총 사망자 507만명, 실종 및 전사자 443만명, 소련군에 잡힌 포로 450만명, 부상자 800만명, 포로생활 도중 사망 63만명, 독일은 2차대전 중 75%의 병력을 투입했고, 1939년 기준 현역대상 남자 46%를 투입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소련군, 병력 3400만명, 총 사망자 1천만명, 실종 및 전사자 668만명, 독일군에 잡힌 포로 578만명, 포로생활중 사망 330만명, 부상자 1834만명, 소련 민간인 사망자 약 2천만명, 소련은 공식적으로 약 3천만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는 독소전쟁 동안, 하루 평균 민간인 1만 4천명 군인 6500명이 사망한 것과 같은 수치 입니다. (분당 10명 사망)


결국 이 전쟁은 소련에 엄청난 휴유증을 남기게 되는데, 남녀 성비 3 : 7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사망자가 워낙 많아 포로 사망자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합 400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독-소전쟁은 대규모 전쟁인 만큼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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