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철이 들었을 무렵에 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기에, 혼자 살고 있던 할머니는 저를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라 생각했는지 굉장히 예뻐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유독 싫어했던 어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할머니를 만나러 간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엄마'로써 그렇게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최근에 맡게 된 일이지만, 어머니는 원래 술집에 나가는 여자였고, 손님으로 만났던 아버지와 계획에 없는 저를 임신하는 바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버지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머머니는 술만 마시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느니 "네..
어느 가정집에서 사망한 지 8개월이 지난, 중년의 여성 사체가 발견 되었습니다. 모자이크 처리 된 사진은 실제 모습 입니다. 8개월 가량 지났기 때문에, 사체는 이미 부패가 심하게 진행 되었기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황 이었습니다. 시체 발견 당시에 집안 상황 이었습니다. 자기 어머니를 살해한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그 사이에 집안을 어지럽혔던 것 이었습니다. 여성의 살아생전 아들과 찍었던 사진은, 다정해 보이는 어느 집안과 다를 것이 없는 가정의 모습 이었습니다. 아들은 평소 학교에서 전교 1~2위를 다투는 수재였습니다. 평소 주변에서 '영수(가칭)'을 평가 하기로는 얼굴도 잘생겼고, 매력적인데 똑똑하기까지 한 말 그대로 '엄친아' 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흠 잡을 것 없어 보이는 아들이 뭐가 못마땅..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남편과 사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만나게 되었고, 2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행복했던 날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나곤 합니다. 저에게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었고, 집안일을 도 맡아 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성실하게 임했고, 저는 그 자체로도 축복 받은 결혼 생활이라 여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아원 출신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 이라는 것에, 그 누구보다 그리웠던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가정이라는 것 자체를 많이 그리워 했기에, 그 만큼 다정다감하게 우리의 가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어찌나 애정이 많고 다정다감한지, 제가 예민하게 굴거나 짜증을 부려도 다 받아주었고, 전적으로 제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먼저 사과..
솔직히 제 어머니 이지만, 저를 많이 힘들게 했고, 그 만큼 저 역시도 싫었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지라, 더 이상은 같이 살 수 없는 판단이 서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아버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았고, 어머니도 아버지가 자기를 많이 때렸기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하셨기도 했고,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화를 엄청 내면서 소리치고 물건 다 깨 부수는 기억이 있었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진 기억나질 않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분위기도 너무 무섭고 싫었고, 어머니는 이혼 후에 절대로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자기를 또 때리러 올 거라면서 그런식으로 이야기 했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를 멀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릴 땐 굉장히 무서우면서 한편으로는 밉기도 했고..
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 땐 왜 그랬는지도 몰랐고, 왜 어머니를 따라가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저 중학생 때, 어머니 모르게 연락하셔서, 그때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아버지께서 훨씬 더 잘 버시고, 잘 살고 계셨는데, 왜 나는 어머니랑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왜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 너무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어머니는 집에 잘 안계셨습니다. 제가 10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 집에 냅두고 아는 지인들과 놀러 다니기 바쁘셨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나 다른 친척들에게 맡기고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밥 2~3줄 대충 사 놓고, 컵라면 박스로 사..
그 친구는 대학교 다닐 때 만났던 친구 였습니다. 그냥 조용하게 학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했던 친구로 기억이 나는데, 이야기 하다 보면, 소방공무원이 되고 싶었다고 하던 친구 였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친했던 사이 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 친척에는 적임자가 없어서 간경화로 오늘 내일 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이 친구가 여자친구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자기가 줄 수 있다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검사를 받아 봤는데, 적임자로 판정을 받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기억나는 건, 당시 여자친구는 같은 학교를 다녔고, 전공이 달랐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많이 없었지만, 거진 매일..
엊그제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정식으로 부모님 집에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자세한 상황을 보진 못했지만, 어머니가 격렬하게 반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남자의 부모님이 이혼 하셨습니다. 전 솔직히 부모님이 이혼 한 사실이 뭐가 대수인가 싶지만, 보수적인 어른 입장에선 또 다르겠구나 싶더군요 두 번째 이유는 직업인데, 소기업의 건설사 사무직 및 잡부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여기서는 어머니가 반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남자 쪽 집안이 굉장히 가난해서 작은 투룸 빌라에 어머니와 형과 살고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빈부는 상대적인 것이라, 저희 집안도 그리 잘 살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별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근데 ..
파도바 시의 어느 뒷골목에는 늙은 창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추레한 몸매와, 자글자글한 주름에 곰팡이 냄새가 나는 로브를 걸치고, 젊을적에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을 것만 같은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 늙은 창녀에게 찾아오는 손님은, 길거리 거지와 빈자들, 병에 걸린 자들, 그리고 어느 작은 한 어릿광대 뿐이었다. "평생 동정이신 복된 마리아여, 아멘..." "성모께서도 어릿광대, 당신을 축복 하실겁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다음 부터는 수도사가 아닌 정식 사제에게 축복을 부탁 드리세요, 저는 그저 방랑 수도사일 뿐입니다." "축복은 많을수록 좋지요 수도사님, 아무튼,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크크.. 전 그럼 이만.." "당분간은 파도바 시에 머물러야겠군.. 아름다운 도시야" 어릿광대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