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귀여운 꼬마의 아이큐는 대략 300이며, 물론 심리학자 에이브라함 스털링은 250~300으로 측정 하기도 했지만, 놀라운 부분은 어릴 때부터 보여준 학습능력 이었습니다.2세에 라틴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3세에 독학으로 그리스어를 마스터, 4세에 해부학에 관한 학술 논문을 집필하기도 할 정 도였습니다. 그리고 8세에 8개 국어를 했으며, MIT와 하버드 의대에 합격하였으나 너무 어린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입학을 거부당했습니다.11세에 수학 교수들에게 4차원 공간에 관한 강의를 하였고, 높이 평가되어 하버드에 입학하게 됩니다. 1910년 하버드에서 윌리엄 제임스 시디스는 학생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왕따를 당하여 신경쇠약으로 요양소에 잠시 보내졌습니다.1914년 하버드..

2003년 후지tv에는 '지루한 귀족' 이라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것에 질려서 지루해진 귀족이라는 설정으로 놀랍거나 웃긴 VTR화면을 보여주고 설정답게 무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웃으면 벌을 주는 포맷의 형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에서, '유체이탈하고 불 위를 걷는 할아버지' 를 섭외하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상자 하나 정도의 크기의 불 위를 걸을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혼자 외롭게 사는 터라 관심받고 싶은 마음에 이런 일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송 내용은 원래대로라면 상자 하나를 해체해서 널려 놓은 크기의 불 위를 걸을 예정이었는데, 스탭이 방송을 좀 더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등유 3리터를 준비해서 노인에게 뿌리게 됩니다. 이때 온도는 무려 1000도를 넘어가던 시..

"그는 족보로 된 임금이 아니다. 전주 이씨의 임금이 아니라 하늘이 낸 임금이었다. … 공자가 관중의 역사적 공로를 칭찬하며,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가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야!' 하였다지만, 오늘 우리야말로 이 사람이 아니고 그냥 짜 먹자는 그놈들만이 있었다면 정말 짐승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 함석헌 한국사 최고의 명군으로 뽑히며, 대한민국의 공용 문자인 한글을 창제한 인물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현재의 한반도 경계를 확립하였고, 농업, 과학, 문화, 확장 등 다방면에서 완벽하다 할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는 군주로 여겨집니다. 태왕의 은택이 황천에 두루 미쳤고, 태왕의 위무가 사해에 떨치셨다(恩澤洽于皇天 武威振被四海). - 광개토대왕릉비 동방의 산골짜기 국가였던 고구려를 요동의 ..

가장 흔한 왼손잡이의 경우 10분의 1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소시오패스의 경우엔 25분의 1 정도로 꽤나 흔하게 볼수 있겠네요 자폐증의 경우에는 59분의 1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쌍둥이의 경우 85분의 1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싸이코패스의 경우에는 백분의 1로 보고 있습니다. 백반증의 경우엔, 120분의 1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홍채이색증 (보통 오드아이라 불림)의 경우에는 167분의 1 다지증의 경우에는 500분의 1 IQ 144 이상의 고지능자는 600분의 1 다운증후군의 경우에는 700분의 1 폴리밀리아(팔다리과다증)의 경우엔 1700분의 1 세쌍둥이는 7200분의 1 알비노 (백색증)의 경우 17000분의 1 무뇌증, 일반적으로 유산되거나 태어나자 마자 사..

난파선의 추정 연도는 기원전 87년경이고, 이 기계는 대략 기원전 150~100년경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계를 제작한 장소는 당시 기계공학과 천문학의 중심지였던 로도스로 추정되며, 배는 로마를 향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추정으로는, 이 기계에서 코린트 문화의 흔적이 엿보이므로 코린트나 그 식민도시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유력한 후보지는 코린트의 식민도시였던 시라쿠사, 바로 아르키메데스가 살던 지역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사한 기계장치 2기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다만 이들 2기의 장치는 시라쿠사 함락 후 모두 로마로 운반되었으므로 기록상의 장치가 안티키테라 기계는 아니라고 보이고 있습니다. 발견 후 50년 동안이나 정체를 알지못했던 물건으로, ..

고대의 마야 문명은 무려 BC 2000여년 전에 발흥하여, AC 1632년에 멸망한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멸망하는 시점에 마야 문명은 이미 쇠티기를 겪고 있었는데, 일단 마야 문명의 근간은 농업이었습니다. 특히 옥수수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이들이 자리잡은 장소가 열대우림이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열대우림은 특성상 땅에 영양소가 거의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이기 때문에 화전을 통해서 지력을 보충했습니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열대 우림의 재생력이 비가 한 번이라도 쏟아지면 순식간에 복구된다는 점 이었습니다.하지만 문제는 소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부터였는데, 마야가 자리한 유타칸 반도를 촉촉하게 적혀주던 비구름이 단체로 남하해버리자., 앙증맞은 마야의 하천들은 순식간에 ..

백제 지배계급의 분열 백제의 왕족과 건국세력들은 만주의 부여와 고구려에서 이주해 온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강 유역의 세력과 연합해 백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성이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함락당하면서 이들은 다시 웅진(공주)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수도를 옮겼으니 집권세력에도 변화가 일어나 웅진 주변 세력들이 권력 중추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백제가 한성 탈환을 시도하려 하자 이들의 분열이 가시화 되는데, 귀족세력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충청도 주변과 그 남부 귀족들이 한성 탈환전에 미온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 전쟁은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보는 장사였고, 한성 탈환에 성공하면 수도는 다시 한성으로 옮겨갈 것이고 왕족과 과거의 집권 귀족세력들은 자신의 영토와 권력까지 회복할..

선사시대 조상들에게 겨울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계절이었습니다. 겨울이 찾아오면, 기온이 영하로 급격히 떨어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온 대지를 뒤덮으면, 초기 인류는 거센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놀라운 창의력, 협동심, 그리고 환경에 대한 엄청난 적응력을 통해, 혹독한 겨울을 단순히 견뎌낸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번영하기도 했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개발한 전략은, 인간 종의 강인함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겨울에 대비하고자 아주 견고한 거처를 짓는 것부터, 불의 힘을 활용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초기 인류는 겨울의 시련을 극복하는 데에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대부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