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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에 거주하던 임아무개 군(19, 구미 S고, 3학년)은 평소 주위에서 불량한 학생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폭력사건으로 대구지검 김천지청에도 입건된 전력도 있었습니다. 2학년땐 마찬가지로 비슷한 이유로 김천지청에 선도유예 처분을 받을만큼 폭력적이고 불량한 학생이었습니다.

 

그의 막나가는 행동은 가정에서 조차 통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가출은 시도때도 없이 밥먹듯이 했고, 집에 있는 아버지의 자가용 승용차를 면허도 없이 학생 신분으로 마음껏 타고 다녔습니다. 

 

1998년 11월에 임군은 우연히도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8세 임아무개양(18)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양에게 첫눈에 반한 임군은 '사촌 오빠로 알고 지내자'는 말 같지도 않은 제의를 했으나, 곧바로 거부 당했습니다. 

 

임군은 그에 굴하지 않고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임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공세를 펼치며 집착 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양은 임군이 달갑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게 되었습니다. 임양은 임군의 계속된 만나자는 제의를 들은채도 안하고 거절 했습니다. 이에 자존심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임군은 더욱 임양에게 집착하기 시작 합니다.

 

임군은 1999년 2월 23일 오후 아버지의 소나타를 끌고 나온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권아무개군(19, 무직)과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밤 10시쯤 구미시 지산동의 위치한 임양의 집에 찾아가 가족을 흉기로 위협한 뒤, 임양을 납치 하였습니다. 

 

임군은 임양을 끌고 부산 등지를 돌아다니다 경북 상주에 잠입하게 됩니다.

 

임양 부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임군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 합니다. 납치 이틀 째, 2월 25일 오후 2시 30분경 경찰은 상주시 복룡동의 한 식당 앞에서 휴대전화를 걸고 있던, 임군의 공범인 권군을 검거하게 됩니다.

 

 

경찰은 권군을 계속 추궁하여 임군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 했습니다. 상주 경찰서는 구미 경찰서의 지원 요청을 받고 비상연락망을 가동 하였습니다. 상주 경찰서 동문 파출소 소속 김인배 경장(34)과 김성균 순경(30)이 현장으로 출동 하였습니다.

 

이들은 오후 5시 30분쯤 상주시 복룡동 팔레스여관 뒤편 정미소 창고 앞에서 수배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임군은 두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격렬하게 저항 하였습니다. 경찰관들과 임군이 몸싸움을 벌이던 도중에 김 경장의 38구경 권총이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임군은 재빨리 권총을 주워 김 순경의 머리에 1발을 발사 하였고, 김 순경은 오른쪽 눈 위에 관통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이후 김경장에게도 1발 발사하여 왼쪽 팔에 명중 시킵니다. 김 경장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임군은 곧바로 도주하기 위해 임양을 끌고 다녔던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시동을 걸려고 보니, 열쇠가 없었고 생각해보니 경찰과 몸싸움 도중에 바닥에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때마침 총상을 입고 쓰러진 김 경장은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하고 있었고, 이것을 발견한 임군은 숨진 김 순경의 허리춤에 권총을 꺼내, 김 경장을 향해 2발을 난사 하기에 이릅니다. 총탄은 김 경장의 가슴과 엉덩이를 맞췄습니다. 임군은 임양에게 '같이 죽자'며 권총을 발사 했으나, 임양이 저항하여 1발은 빗나가고, 1발은 땅바닥에 박혀 총탄이 소진 되었습니다.

 

임군은 정미소 안으로 임양을 끌고 간 뒤에 문을 걸어 잠그며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 합니다. 경찰 60여명의 인원이 출동하여 정미소를 가득 에워싸고 자수를 권유 하였습니다. 하지만 임군은 더욱 격렬히 저항했고, 경찰은 약 30분 뒤 강제 진압에 나서게 됩니다.

 

경찰이 진압작전이 시작하자 임군은 '함께 죽자'며 임양의 후두부를 빈 권총으로 가격 했습니다. 또한, 흉기로 임양의 목와 왼쪽 손목, 허벅지등을 마구 찔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왼쪽 손목을 찌르며 자해극을 벌이기 시작 합니다.

 

상황이 다급해져 어쩔 수 없이, 경찰은 임군에게 실탄 2발을 발사하여 어깨와 목에 명중시키게 됩니다. 임군은 경찰과 대치하여 인질극을 벌인 지 약 1시간 만인 오후 6시 50분에 검거 되었습니다.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 되었던, 김인배 경장은 상주 성모병원에서 6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혈압과 맥박 상태가 악화되어 26일 오전 4시 2분에 사망하게 됩니다. 김인배 경장은 두 아들, 김성균 순경은 1남 1녀를 남기며 순직하게 되었습니다. 두 경찰관은 1계급 특진과 국립묘지에 안장 되었습니다.

 

임양은 후두부를 권총에 가격 당하여 시신경이 심하게 손상되어 뇌진탕 증세를 보였습니다. 또한, 사물 식별이 거의 불가하여 실명 위기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납치극을 벌였던 임군과 여기에 가담한 권군은, 각각 살인과 폭력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 졌습니다. 법원은 임군에겐 무기징역을, 권군에겐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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