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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주 잠깐동안에 알고 지내던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급하게 장례식 다녀온 뒤로 계속 속이 쓰리고 참담하고 그렇습니다..

 

고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쓴다는 것이 참 몹쓸 일일까 싶다가도, 주변에 기댈 곳 하나 없었던 그 친구를 누군가라도 추모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조금 풀고자 작성합니다.

 

 

저는 어릴 적 초등학교 입학을 막 앞둔 시점에, IMF를 직격으로 맞고 같이 살던 가족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와 3살 터울 남동생은 고향이었던 부산 할머니집에 가게 되었고, 아버지는 서울에 일을 하기 위해 가셨으며, 어머니는 지인의 가게에 일하러 제주도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볼 수 없었으며, 저는 할머니와 동생 셋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보다 막 불행하고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워낙 기운 좋고 정정하신 할머니가 밥도 잘 챙겨주셨고, 동네의 아이들과 금새 친해지면서 사이 좋게 잘 지내게 되었고, 다니게 된 학교도 나름 재미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사시던 곳은 부산에 계신 분 들이라면 들어보면 다 알만한 주공아파트 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2학년까지 잘 다녔는데, 그렇게 2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 사이에 부모님 얼굴을 한번도 못봤습니다.

 

할머니는 답답하셨는지, 매일같이 저희 부모님을 '새끼 내다버린 년놈들' 이라며 욕을 하셨었습니다. 그러곤 너거가 고생이 많다며 자주 우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점점 집에 있는게 싫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가뜩이나 에너지 넘치는 초딩일 때라 그런지 밖으로 나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날 쯤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데 가장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소개받은 그 친구는 그 동네에 골목대장 같은 아이였습니다. 3학년이 되면서 저는 그 골목대장 친구와 붙어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친구는 고학년 형들 뿐 아니라 중학생 형들과도 알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시기가 어려운 시기였고, 살았던 동네도 다들 어려운 동네인 만큼, 아무런 제지 없이 방치된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저녁이 지나고 밤이 늦어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골목이나 놀이터, 공터에서 서성이는 애들이 천지였습니다. 저라고 다를 것 없이, 할머니가 주무시는 초저녁이 지나면 8시~9시쯤 밖으로 나가서 애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 애들 5~6명이 모여서 놀아봐야, 옥상탈출, 경찰과 도둑, 술래잡기, 나무작대기 칼싸움 같은 가벼운 놀이가 다 였습니다.

 

여느날처럼 그렇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골목대장 녀석이, '재밌는거 하러갈래?' 라고 이야길 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고학년 형들 따라다니면서 재밌는거 알아왔다고 알려준다고 가자'고 하는데 누가 거절을 하겠습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같이 따라 갔습니다.

 

주공아파트 단지는 1단지 2단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단지엔 2~3층정도 좌우로 긴 형태의 낡은 상가가 있었습니다. 상가 지하에는 큰 마트가 입점하고 있었습니다. 2층, 3층은 거의 절반 이상이 폐점포들로 줄지어 있었습니다.

 

골목대장 녀석이 그 상가로 저희를 데리고 가는데, 그렇게 2층 계단을 올라가니까 술냄새 담배냄새가 풍기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도착해보니 동네에 한량같은 아저씨들이 다 모여서 노름을 하던 장소였습니다. 얇은 천막 같은 걸로 입구를 대충 막아놓고 있었고, 거기에는 무서운 아저씨들도 많이 있어서, 애들이 지나가길 꺼리는데, 골목대장 녀석이 그 노름장 옆 코너로 돌아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습니다.

 

따라가 봤더니, 거기엔 엄청 마르고 꾀죄죄한, 때 묻은 야상을 입은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당시가 봄, 여름이었는데 그런 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골목대장 녀석은 "여기있네" 라고 말하면서 그 여자아이를 끌고 상가 건물 뒤편 분리수거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더니 거기서 애를 때리고 패기 시작합니다. 발길질, 주먹질을 하면서 그냥 되는대로 거침없이 때리는데, 저는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렸습니다.

 

저기 노름장에 얘 아부지 있는거 아니냐고 그러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 녀석 하는 말이 '얘 맨날 저기있고 쟤 찾지도 않는다'고, '형들이 심심하면 와서 때리고 괴롭히는데 암말도 안하는 애'라고 결국 저는 용기 없고, 겁많고, 비겁한 어린아이에 불과 했기에 더 이상 말리지도 가담하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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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심한 충격을 받은 저는, 조금씩 밤에 놀러나가는 걸 줄이고, 놀게 되더라도 상가로 향하는 분위기면 빠지곤 했습니다. 저에겐 다행스럽게도 동네에 엄청 무섭다고 소문난 저희 할머니 핑계를 대면서 빠질 수 있었습니다.

 

딱 한 번 봤지만, 그렇게 인상이 박히니까 그 여자아이가 계속 눈에 아른 거렸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고 바로 옆반 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었고, 점심시간에 급식 먹은 뒤 다들 나가서 노는데, 늘 혼자 창가에 서서 화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고가며 힐끔거리다 혼자 있을때 몰래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도 밤에 걔네들이 상가 가서 너 괴롭힐거다.', '오늘은 형들도 같이 가니까 미리 도망가 있어라' 그 아이는 듣는둥 마는둥 하길래, 제가 답답해서 왜 거기 있냐고 미리 도망가 있으면 안 되는 것 이냐면서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니 결국 대답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가 노름하는데 옆에서 술담배 심부름 시키려고 데려다 놓는다.', '그런데 찾을 때 없으면 아버지한테 맞아 죽는다' '차라리 애들한테 괴롭힘 당해도 거기 있는게 낫다.' 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그냥 아버지 옆에 붙어있으면 안되나?' 하고 물으니, '가시나가 노름판에 기웃거리면 재수 없다고 밖에서 기다려라' 라고 하더랍니다. 갑갑한 마음에 저는, 갑자기 무슨 정의감이 들은건지 얘를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 봤을 때, 일단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은 너무 젊은 여자분이셔서 그렇게 믿음이 가질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생각 없이, 거침 없는 행동으로 제가 직접 상가로 찾아 갔습니다.

 

저녁에 상가의 노름판에서 그 친구의 아버지가 되느냐고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퀭한 눈을 하고 있는 아저씨가 '난데?', '너 뭐냐'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단도직입 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저씨 딸이 매일 같이, 동네 아이들한테 맞고 있다', '저렇게 그냥 냅두면 안된다.' 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말과 행동은 '니가 뭔데 내 딸래미가지고 이래라 저래라하노' 하며 손찌검을 할려고 하기에 도망치고 그 후에 몇 날 며칠을 고민 했습니다.

 

결국 제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온전한 제 편이었던, 동네에서 기쎄고 무섭기로 소문 난 저희 할머니한테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할매, 내가 어쩌다보니 좀 불쌍한 애를 알게 됐는데 좀 도와주고 싶다.' 이런식으로 부탁 드렸습니다.

 

제 얘기를 조용히 다 듣더니, 할머니는 큰 결심을 하시곤 저보고 앞장 서라며 그 상가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날은 주말 대 낮이었는데, 벌써부터 노름판에 술판에 개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 여자 아이도 상가 구석 계단에 쭈구려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할머니가 노름장으로 들어가선 몇 번이고 소리를 쳤습니다. '아재가 애 아빠라면, 애 밥 맥일 사람은 있어야하는거 아니냐고 딸아이를 저래 냅두면 되냐고' 막 호통 치셨는데 그 후에, 어떻게 이야기가 잘 된건지 학교 마치면 그 여자아이는 저희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돌아가고 했습니다.

 

저랑 동생이 밥먹고 텔레비전으로 만화를 보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멍하니 같이 보다가, 시간되면 제가 집에 데려다 주었고, 돌아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들 마주 칠까봐 조심조심 하면서 데려다 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TV 보고 싶은거 보라고 리모컨을 쥐어줘도, 너네 보는게 더 재미있다며 가만히 있고, 밥도 주는대로 다 먹고 좋아 하는거, 싫어 하는거 그런 표현이 없는 아이 였습니다.

 

솔직히 그렇게까진 친해지진 않았어요, 저도 비겁한 놈인지라 그런 와중에도, 그 애한테 학교에서는 아는 척 하지 말라고 그랬기 때문에, 깊게 친해지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동안은 그런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방학이 시작 되었고, 집에가서 보니,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집 형편이 좀 괜찮아져서 저희 형제를 데리러 오셨고, 이쪽 동네가 위험하기도 위험하고 그래서 엄마가 사는 동네로 전학부터 가자고 그랬는데, 당시 저는 그 동네를 벗어나는 생각에 마냥 기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 되는 그 날 전 곧바로 엄마 손을 잡고 그 동네를 떠났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동네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할머니도 강원도 사시는 고모집으로 가시게 되었고, 그 아이 소식은 계속 모르고 지냈습니다. 굳이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그 동네를 잊고 싶었던 만큼, 그 아이도 잊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 문제 없이 평범하게 잘 자랐고, 남들처럼 군대에 가고 대학에 가며, 취업 후에 정신 차리고 보니 유부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은 얄궂게도, 지금으로 부터 4년 전에, 저희 회사에서 경리 업무를 보던 분께서 급하게 퇴사를 하셨고, 급한 자리인 만큼 곧바로 파견 근로직을 뽑았습니다.

 

그 인수인계 담당이 저 였는데, 파견근로자 될 사람 이름이, 너무 익숙한 이름 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흔한 이름도 아니고 50대 어머니 같은 많이 특이한 이름이라서, 보자마자 혹시나 했습니다.

 

그리고 실물로 보니까 바로 알아 보겠더라구요, 이력서 쭉 훑어보는데 순탄하게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참 여러가지로 많이 힘들게 살아온 티가 묻어 났습니다.

 

굳이 아는 척은 안했습니다. 어릴 땐 철 없는 마음으로 피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아픈 과거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상처를 들 쑤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입니다.

 

그렇게 한 달을 가까이 사무적 대화만 하며 일 했는데, 어느 날 사내 체육대회 준비 한다고 그 친구와 같이 물건을 사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서로 말 없이 걷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예전에 부산에서 주공아파트 살던 누구 아니냐' 라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맞다' 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긴가민가 했는데 얼굴이 많이 안 변해서 알아 봤다고 하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고마웠다고 너 이사가고 해도 1년 넘게 너희 할머니가 보살펴 주셨다고 할머니는 잘 계시냐' 하며 살갑게 구는데 참 고마웠습니다.

 

사실 와이프한테 그 친구 이야기 하면서, 아는 체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는데, 현명한 제 와이프는 먼저 아는체 하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고맙다고 말하는 그 친구에게 저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도 없이 이사 가버리고, 영웅 심리로 도와 주는 척 하다가 학교에서는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한 것 등등 미안 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괜찮다고 자기 인생에서 제일 따뜻했던 기억 중 하나라고 연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후 둘이 간단히 저녁도 한 번 먹고, 회사에서도 꽤나 잘 챙겨주며 저 나름대로는 잘 지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친구는 다른 직원들과 교류함에 어려움이 많았고 일 적으로 실수가 많았습니다. 결국 1년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은 하지 못했습니다.

 

일자리 주선이나, 지인 소개 같은 것들을 통해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습니다. 선뜻 나서서 도와 주겠다고 하는 것이 그 친구가 좋아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다시 연락 한 적은 없었는데, 퇴사 후에 1년쯤 지났을 때 그 친구에게 문자가 오더군요. 할머니 사는 곳을 물으면서, 꼭 찾아가서 인사 드리고 싶다고, 그래서 알려 주었고 할머니 뵙고 왔다고 고맙다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이후로 간간이 할머니 핑계 대면서 소식 묻고 연락 했는데, 어느 순간 답장이 없었습니다. 요새 많이 바쁜가보다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냥 이제 내가 불편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어서 저도 굳이 연락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전에 갑자기 죽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집에서 혼자 살다가 스스로 자살했다고, 휴대폰에 있는 연락처에는 문자가 발송된 거 같은데 장례식장에는 사촌 언니라는 분 한 분만 앉아 계셨습니다.

 

상복 입은 사람도 없었고 1일장으로 간소하게 끝나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화장하는 순간까지는 자리를 지켰습니다. 와이프와 그 친구 같이해서 밥도 먹은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와이프가 참 많이 울었습니다.

 

좀 더 살갑게 굴 걸, 한 번 더 들여다 볼 걸 하고 후회가 밀려든다고 하면서 펑펑 울더군요. 그 친구는 저에게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제가 그 친구에게 더 고마운 게 훨씬 많습니다.

 

언젠가 그 친구가 '살면서 나쁜 짓 안하고 피해 안주고 착하게 살아 가자고 다짐은 하면서도 쉽지 않았고 아닌 적도 많았는데', '그런 나에게 참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너희 가족 덕분에 자기도 사람을 조금이라도 믿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말해주던게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떵떵거리진 못했더라도 언젠가 꼭 행복하게 살길 바랬는데, 평생을 안타깝고 쓸쓸하게 보내다 간거 같아서, 상황이 상황이고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힘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나 하나, 내 가족만 바라보고 챙기기도 빠듯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사람들 한번 씩 더 들여 다 보려 합니다.

 

이 글 읽으신 분들 모두 다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친구도 거기서는 행복한 곳으로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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