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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5월 10일 경기도 강평군 설악면 청평 저수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80명으로 밝혀 졌으며, 당시 설악면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가던 이 시외버스는, 1970년부터 노선 운용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 2회만 다니고 정원은 53명이 한계 였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언제나 과적 운용을 하였지만, 경찰은 단속을 잘 하지 않았고, 사고 당일에도 학생들, 군장병, 방생기도를 가던 스님, 신체검사를 하러 가던 청년등을 포함하여, 무려 94명이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1970년에도 차량 한대가 추락한 적이 있었던, 청평호를 지나는 폭 4.5m의 위험한 커브길을 달리다 미끄러져 높이 11m 아래로 떨어져 깊이 20m의 청평호로 가라 앉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교통 사고 입니다. 

 

 

12.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

1971년 12월 25일 서울시 중구 충무로동 대연각호텔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191명, 부상 68명으로 밝혀 졌으며, 화재 원인은 1층 커피숍에 있었던 LPG 가스가 폭발한 것으로 밝혀 졌습니다. 

 

건물에는 비상계단도 몇개 없었고, 옥상 출입문도 닫혀 있었는데, 당시에 국내 최고의 32m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진화 작업에 나섰으나, 7층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3.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12월 2일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53명, 부상 76명으로 밝혀 졌으며, 무대 위 조명장치가 큰 소리로 '펑' 터지면서 화재가 시작 되었고, 원인은 전기 과열로 인한 합선 이었습니다. 

 

 

14. 대왕코너 화재 사고

1974년 11월 3일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88명, 부상 35명으로 밝혀 졌으며, 희생자 대다수는 6층 나이트클럽에 있었던 젊은 손님들 이었습니다. 

 

그런 화재 상황에서도 종업원들이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내보낼 수 없다면서, 사람들을 나가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구는 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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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리역 폭발 사고

1977년 11월 11일 이리시(익산시) 이리역(익산역)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59명, 부상 1,343명으로 밝혀 졌으며,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현 한화의 전신) 소속의 제 1605 화물열차는, 당시 정식 책임자도 없이 다이나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T 가량의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이리역에서 발차를 대기하던 중 폭발사고를 일으켰습니다. 

 

 

16. 경산 열차 추돌사고

1981년 5월 14일 경상북도 경산군 고모역 부근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55명, 부상 233명으로 밝혀 졌으며,  사고 5분 전, 서울행 제 116호 특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와 먼저 부딪혔고, 사고를 낸 특급 열차의 기관사는 통제실에 알리지 않은 채, 오토바이와의 충돌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서행으로 후진하는 과정에서 뒤이어 오던 부산발 대구행 보통 급행열차가 후진을 하던 특급열차 뒤 부분을 추돌하여 사건이 발생 되었습니다.

 

 

17. 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4년 1월 14일 부산시 부산직구 부전동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38명, 부상 68명으로 밝혀 졌으며, 당시 헬스클럽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김 모씨가 사우나탕에서 헬스클럽으로 들어간 뒤, 그 곳에 설치된 석유난로의 심지를 최대한 올려 점화한 후, 사우나탕으로 나와 약 20분간 점화 상태를 점검 하였습니다.

 

플라스틱형 석유통 주입구에서 석유를 주입하던 순간 호스의 기름이 난로에 뿌려 지면서 발화된 화재 입니다. 

 

 

18.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1993년 3월 28일 부산시 북구 덕천2동 전복 사고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78명, 부상 198명으로 밝혀 졌으며, 경부선 하행선의 구포역 인근 삼성종합건설의 공사현장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 사고발생 5분 전인 오후 5시 24분 경 94km/h로 사고가 일어난 공사현장을 앞서 운행한 제 175열차(선행 열차)가 통과한 후 노반이 함몰 된 것으로 추정 하고 있습니다. 

 

이후 서울역을 오후 12시 45분에 출밣여 부산으로 가던 무궁화호 제 117열차가 물금역을 오후 5시 23분 경에 통과하여 약 85km/h로 운행하다 구포역을 약 1km 남겨두고 선로 노반이 침하되어 있는 것을 약 50~100m 전방에서 발견하고 비상제동을 체결 하였으나, 제동거리가 미치지 못해 기관차 및 발전차, 객차 2량 등 총 4량이 탈선, 전복 되었습니다.

 

 

19.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바운군 위도면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292명으로 밝혀 졌으며, 군산 서해훼리 소속의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사고 입니다.

10시 10분쯤에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돌풍을 만났고, 회항 하려고 뱃머리를 돌리던 도중에 파도를 맞아 심하게 흔들리면서 곧바로 전복되고 침몰 되었습니다.

승객은 정원을 초과하였고, 승무원은 규정된 인원보다 부족 한 상황 이었는데, 사건을 수사한 전주지검에서는 초과 승선과 과적, 운항부주의, 방수구 부족 등이 사고의 원인 이었다고 발표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 사고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20.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4년 10월 21일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에서 일어난 사건 입니다.

 

최종 인명피해 사망 32명, 부상 17명으로 밝혀 졌으며,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약 50m가 붕괴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성수대교는 건설될 당시, 트러스식 다리로 건설 했는데,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 이었습니다.

사고원인은 교량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의 연결이음새의 용접 불량과 유지관리 소홀이 주 원인으로 판단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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