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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는 결혼한 사람들은 절대로 바람피지 마세요. 그리고 처녀 총각들도 기혼인 남녀와 바람피지 마시구요.


너도나도 섹스로 참회하는데 뭐 자랑일까요.. 진심으로 참회를 해해야지


간통죄 폐지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와 같은 개 거지같은 법을 만든, 똑똑하신 윗대가리들 덕에, 저 같은 무식한 사람의 가정은 그저 파탄이 나는 겁니다.


10년 전 마누라와 저는 30대 부부에 딸 하나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제가 다니던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의 거래처 직원이었고 저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저는 전문대를 나왔고, 그저 와이프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따라다녔고 와이프는 4년대 졸업에 얼굴도 이쁘고, 세련되고 몸매도 섹시했습니다.


말도 사근사근하게 잘하고 상냥해서, 대략 9개월 가까이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그 당시엔 진짜 세상이 다 내 것과도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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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혼하고 와이프는 회사 그만두고, 그렇게 딸 낳고 지난 10년 동안 우리 부부는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제 생각에만 잘 살았던 것 같기도 하네요.

 

와이프는 이쁘고 가슴크고 늘씬하고, 그런데 이런거 어쩌면 다 불행의 시초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우리 아파트 옆집에 이혼남이 이사온 시기부터 뭔가 제 삶이 뒤엉키기 시작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옆집에 장동건같이 생긴 40대 초반 이혼남이 이사를 왔는데, 복도에 담배꽁초 때문에, 집사람이 몇 번 그 놈에게 주의를 준다고 하더니만, 그 것이 오히려 서로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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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베퉌가 맨날 집사람이 하는 말이.. 옆집 아저씨까, 옆집 아저씨가...집사람 언제부턴가 옆집 이혼남 얘기를 자기도 모르게 너무 많이 하더군요.

 

전 찌질하게 보일까봐 일체의 잔소리를 안했고, 그리고 집사람을 너무 사랑했고 떠받들고 살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집사람은 제 인생에 최고의 선택이었고 그저 기쁨이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퇴근하면 집에서도 화장 진하게 하고 있었고, 집에서 입는 반바지도 짧아졌습니다. 맨살을 너무 많이 드러더군요.


애 엄마가 너무 노출이 심하냐고 동네 아줌마들사이에서도 말들이 많았습니다.


과거에도 가끔 그런적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여자의 한때 기분이려니 했습니다.


그때 바람의 징조를 포착을 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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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일요일에 집에서 와이프가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전혀 못 보던 야한 속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속옷 치고는 너무 야했습니다. 도저히 주부의 속옷으로 보기 힘들었고, 그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브레지어도 이상하게 일부러 작은 것을 사서 한건지 유방이 꽉차게 보이게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혔는데, 이상한 일이 점점 많아지더군요. 옆집 이혼남이 주말에 가끔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남자가 원래 착한사람인데 반상회에서도 여자가 바람펴서 저렇게 혼자된거라고 동정을 얻었기도 하고, 그 집 애들은 시골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새낀 일욜날은 교회도 혼자 나갔습니다. 겉보기에는 정말로 절대 그럴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퇴근길에 그 새끼가 아파트 앞에서 혼자 쓰레기 줍는 거 보고 좀 놀랬습니다. 그 모습에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고만 생각 했습니다. 


마누라가 그 새끼한테 반찬을 가져다 줄 때에도 별의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언제부턴가 마누라가 저와의 잠자리를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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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누라 애 낳고 관리도 잘해서 몸매도 좋고 가슴 모양도 예뻤고 저 역시 기운이 넘칠때라.. 가슴 늘어지면 안된다고 모유수유도 싫어했던 와이픈데, 마누라는 돈 없다고 불평하면서 에어로빅이니 뭐니 그런거 자주 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깨끗하진 않습니다. 노래방에서 놀다가 걸린 적 있고. 도우미 가슴도 만지고 놀았습니다. 한동안 친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잘난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섹스는 안했습니다. 다만 나중에 술먹고, 뭐해 나 지금 가도 돼? 라면서 이렇게 문자를 보낸 것을 실수로 마누라에게 보내 걸린적 있습니다.


마누라는 네가 감히..이런 식이었고, 한 동안 저를 벌레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쥐죽은 듯 살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싹싹 빌었습니다.


물론 살다보면 마누라도 한눈 팔 수도 있고, 봄 바람에 그러려니 하고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마누라는 점점 이상해져만 갔고, 제 눈에도 확실히 집에서 입은 옷도 신경쓰는 눈치고 화장도 점점 진하기만 했습니다.


제가 계속 고민하자 제 친구가 방법을 하나 알려줬는데, 집 마루 천장에 작은 소형 비디오 몰래 설치해 보자고.. 하... 반전드라마 재밌어 하지마세요. 이게 자기 이야기가 되는 순간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전 그 날 저보다 덩치 좋아 보이는 옆집 이혼남을 어떻게든 패 죽이려고, 작은 박달나무 몽둥이를 준비했습니다.집사람과 불륜이 확인되면 쥐어 패버리고 그냥 감옥갈 각오까지 하며 말입니다.


그리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며칠 동안 매일 비디오 틀어봤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어느 날 토욜에도 출근한 날에 어떤 허우대 멀쩡한 개새끼 하나가 우리집에 슬쩍 들어왔습니다.


애는 어느 집에 놀다 오라고 보냈는지 보이지도 않고, 집 사람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젼 보고 아주 둘이서 웃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새끼가 아주 마누라 반바지 입은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떠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아주 쉴새없이 주무르는데.. 제발 거기까지만 거기까지만,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점점 심해지더니 마누라 웃옷 속으로 손들어가서 가슴을 아주 대놓고 주무르는데.. 마누라는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 마누라가 저 새끼 밀어냈으면.. 평소에 가슴좀 만지거나 빨려고 하면 귀찮아하던 마누라가.. 마음은 무너졌지만 차라리 거기까지라면 그래도 좋았을 것 입니다.


그러더니 그 새끼가 마누라 옷을 다 벗기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왜 속옷을 야시시한 걸로 사 입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힐끗 얼굴이 보였는데 미친, 옆집 남이 아니라 아랫 집에 사는 혜민이 아빠 였습니다...


혜민이가 우리 애랑 친구라서 부모들끼리도 잘 아는데, 혜민이 아빠는 나이가 많고 점잖아서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누라는 나중에 속옷 차림으로 혜민 아빠 앞에서 몸매 자랑하다가 흔들면서 속옷까지 벗는데, 나중에 그 개새끼가 마누라 가슴도 빨더니 거기도 빨더라. 내가 거기서, 차마 못보겠어서 울면서 비디오를 껐습니다.


그 개새끼는 학력도 좋고 다니는 회사도 재벌 기업에, 언젠가 그집 부부랑 같이 식사 후 자기가 엘리트 혜민이네 아빠랑 코드가, 맞는다고 미친 마누라 주절거렸을 때 낌새를 눈치했어야 하는건데...


인터넷에 올려 이 개년놈들 생매장 시키고, 자살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차마 딸 때문에 못하겠더라.. 그럼 차라리 내가 죽어야지..그게 최고의 복수지 생각하고, 옥상 두번이나 올라갔다가 차마 마음 약해서 돌아 왔습니다.


저녁에 누님 오라고 해서 딸 좀 맡아서 데려가 달라고 하고 장인장모 모셔 왔습니다. 긴히 보여드릴게 있다고 아무 말없이 비디오 틀어드렸습니다.


그 잘난 대졸 딸 좋은 회사 사무직 출신이라면서, 자기 사위 은근히 무시하던 장인장모 표정이 정말 가관이더군요. 장모님은 울고불고 장인어른은 그저 줄 담배만 피웠습니다.


자식 잘못 키운죄라고 장모님 내 손잡고 울고 내가 한번 더 저년 그러면, 내가 먼저 저년 앞에서 약먹고 죽겠다고 하셨을때
나도 마음이 좀 그랬는데 하지만 그런 것 없이, 두년놈들 섹스하는 장면은 안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진 않았으나 혜민이 아빠가 자기들 딸래미 거기까지 들이대는 거 다 봤으니 두 분다 할말 없을 것 입니다.


장인장모가고 난 집안 가구 하나하나 때려 부수고. 마누라와서 한단말이  그거 지켜보더니 차라리 그냥 이혼하자고 대들더군요...


저한테 한미디만 했었어도...저한테 거짓으로라도 울면서 빌었어도.. 저한테 다시는 안 그러겠다 매달렸어도 용서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나한테 과분하던 마누라 난 진짜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 망가뜨린 혜민이네...다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짐승 욕하면서 짐승 짓할순 없었습니다.


마누라와 결국 이혼하고 딸은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마누라가 혜민이 아빠와 결합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잘난척 하는 걸레는 걸레의 삶을 살것이고. 그래 너 잘 살아라.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독신이던 누나 우리집으로 모셔서 우리 누나가 우리 딸 잘 키워줬습니다.나이차도 많이 나고 내겐 어머니 같은 누님입니다.


평생 잊지 않고 은혜 갚을 생각이고, 누님 노후도 제가 꼭 책임진다고 했습니다. 우리 딸 하나만 믿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반노동자직이고 수입도 변변치 않지만 저는 추가근무까지 자원했습니다. 일없는 날이면 대리운전도 뛰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엄마없이 키운 죄 물질로라도 딸애한테 보상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딸 시집 갈때는 진짜 잘해 주리라고 마음먹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술도 안먹고 담배도 끊었고, 그러니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갔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고 와도 집에 잠들어 있는 공주같은 우리 딸 보면 신기하게 피곤함이 싹 가셨습니다.


쌓이는 통장잔고를 보면서 온몬의 고통이 싹 가시기도 했습니다. 우리딸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갈때 쯤, 제게 중매가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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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가 얼굴도 참하고 통통하고 다 좋은데 다리를 약간 절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못했고 모은 돈도 5백만원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허우대 멀쩡해서 이쁜 몸매 자랑하느라..이 남자 저 남자한테 눈 웃음치면서 치근덕 대던 전 와이프 생각하니, 다리를 절어도 마음을 저는 것보다 제대로 정신박힌 여자면 더 좋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혼인신고만하고 살림 합치고, 다음 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색시는 아팠던 내 과거를 보상할 복덩어리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누님과 함게 살면서 집안도 더 깨끗해지고 반찬도 풍성했습니다. 색시도 빈손으로와서 미안한건지 없는 살림 보태야 한다고
동네 마트에서 다리 절면서 알바도 했습니다.


색시는 잠자리도 순종적이었고, 예전 마누라는 졸라야 졸라야 한번 해주고 그냥 샤워하고 뒤돌아 자는데, 색시는 과묵하고 뭐든 순종적인 자세로 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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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고, 우리는 같이 야동보고 잘 정도로도 친해졌습니다. 절 만나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굳이 얼굴, 몸매 이런거 너무 따지지 마세요, 그런거 다 잠시 뿐이고, 지금 보이는 것에 너무 몰두해서 결혼하면, 그 보이는 것에 다른 사람들도 그 보이는 것에 홀리게 됩니다.


그렇게 당신을 위해서만 살면 다행인데, 자꾸 다른 사람에게 눈길받고 싶어하고, 몸매 드러내고 싶어하며, 결국 바람은 그렇게 시작 되는 것 입니다.


제 딸은 결국, 사춘기 잘 극복하고 공부도 잘해서 올해 서울에서 상위권 대학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그래도 지 엄마 닮은 건지 공부는 나름 잘했습니다.


제 사무실 책상과 제 핸드폰에, 우리 딸 여고 졸업사진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우리 딸 대학 입학하는 날..제가 동네 사람들에게 술사고 실컷...자랑하고, 집에 들어와서 밤에 자다가, 몰래 화장질 가서 수도꼭지 틀어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예전 마누라한테 과거에도 문자온 적 있습니다. 아니 이제 욕하지말자. 다 지난 일이니까 난 더 행복하니까.

 

차마 재결합하자는 말은 지은 죄가 있어서 못하고 딸 보고싶다고 했지만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우리 딸이 커가면서 몰래 지엄마 만났는지까진 모르지만, 그것까지 차마 막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겐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이지만, 제 딸에게는 엄마인데 천륜의 정을 어떻게 함부로 끊겠습니까...


예전에 처남이 찾아와선 소주 한잔 마신적 있습니다. 저에 대해 이것 저것 묻더니 그럼 됐다고 했습니다. 자기 누나는 지방에서 연하남과 살림 차렸다고 했는데, 도통 연락이 없다고, 헤어진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안부만 적당히 묻고 처남도 아무 말 없이 돌아 갔습니다. 우리 딸 많이 귀여워하던 착한 처남이었습니다. 냉랭한 제 모습에 뒤돌아서는 처남도 참 안됐지만..  저도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딸에게 며칠 전에 불러놓고 아빠가 이러이러해서 이혼했다.너한테, 미안하다고, 그치만 너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했을 때.. 우리 딸은 그저 아무말 없이 저를 안아줬습니다.


그거 하나로 제 지난 고통은 다 끝났습니다. 다 풀렸고, 그 순간 바람난 마누라도 용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불행한 삶이었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좋은 날들은 언제나 앞 날 속에 남겨져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 듣고 누님도 많이 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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