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애착 실험의 숨겨진 이야기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훗날 원숭이 애착실험이라 불리는 유명한 실험을 하게 됩니다.

 

 

이 실험은, 새끼 붉은털원숭이를 어미랑 분리시킨 뒤, 철사로 만든 인형과, 천으로 덮인 인형, 이 둘 중 어느 쪽을
새끼가 어미로 선택할까 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실험결과는, 어린 원숭이는,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엄마에게 다가갔고,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에게 붙어있었습니다.

 

어린원숭이에겐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어미와 비슷한 포근한 감촉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아이에게 애정과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건, 오늘 날엔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신선한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부모들은 스킨십을 자제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야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리학계에선 모유수유를 통해 아기가 엄마와 애착을 형성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할로우의 실험은 반대로, 모유수유보다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걸 밝혀낸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the Nature of Love)이란 제목으로, 나온 이 실험 논문은, 4000회 이상 인용되며, 심리학 서적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연구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할로우가 뒤이어 한 실험들이 광기와 잔혹함으로 얼룩져 있다는 건, 세간이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할로우는 헝겊 엄마를 변형시켜, 악마 엄마(Evil artificial mother)를 만들게 됩니다.

이 악마 엄마들은 헝겊 엄마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속내엔 새끼에게 좌절감을 주기 위한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격렬하게 흔들거나, 캐터필트가 튀어나와, 새끼를 떨어뜨렸고, 심지어 가시가 튀어나와, 고통 때문에 엄마 인형을 안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악마 엄마에 대한 새끼의 반응은 굉장히 처절했는데, 새끼는 공포와 고통을 느끼면서도 엄마 인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장치가 멈추고 잠잠해지면 다시 다가가 인형을 안았으며, 비록 실험이지만 계속 버림받고 고통을 느껴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접촉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것입니다.

 

새끼 원숭이가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자, 할로우는 보다 강력한 충격을 주는 장치를 만들기로 합니다.

 

 

절망의 구덩이(Pit of despair)라 이름 붙은 이 장치는, 사람으로 따지면 독방에 감금하는 장치이었지만, 그 환경은 훨씬 혹독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벽은 깔대기처럼 기울어진 구조여서, 기어올라도 다시 아래로 미끄러졌고, 운 좋게 올라간다 해도 뚜껑으로 덮여있어서 탈출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장치에 감금된 원숭이는, 처음 1-2일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고, 이내 곧 비좁은 바닥에 웅크린채 가만히 있게 됩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갇혀, 어미의 애정도, 다른 원숭이와 사회적 접촉도, 심지어 빛도 차단된 환경에서 30일~1년간 격리되는 실험은, 새끼 원숭이의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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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 밖으로 나온 원숭이는 몸을 웅크린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를 껴안거나, 사육장을 반복해서 빙빙도는 이상 행동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실험한 12마리 원숭이 중 2마리는, 장치에서 나온 후 음식을 거부하다가 거식증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이런 실험을 받은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와 조금도 어울리지 못했는데,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다른 원숭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공격성을 자제하지 못했으며,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수컷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 입니다.

할로우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들의 사회적 노력은 애처로웠고 성적인 노력, 짝을 맺으려는 노력은 처량했다."

 

그리고 실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습니다.

 

 

 

할로우는 이 원숭이들이 어미가 되었을 때 행동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성이 결핍된 이 원숭이들은, 짝을 맺거나 새끼를 낳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그래서 할로우는 구속 장치를 만들어, 암컷 원숭이를 묶어두고 강제로 임신시키게 됩니다.

 

 

강제로 어미가 된 원숭이는 낳은 새끼를 조금도 돌보지 않았고,. 그저 새끼를 안아주지 않고 방치하였습니다.

 

 

 

차라리 방치되었던 새끼 원숭이들은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일부의 어미는 새끼를 짓 누른 채, 손발을 잘근잘근 씹거나, 새끼의 머리를 으깨서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잔혹하기 그지 없던, 할로우의 실험은, 당시 기준으로도 윤리적인 문제가 많았고,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70년대 미국에서 동물인권운동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히게 됩니다.

 

 

아이에게 따뜻한 스킨십이 필요하다며,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심리학자가 어째서 잔혹하기 그지 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변한것인가..

어쩌면 그 진실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쓸쓸히 죽은 할로우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고 끝내기엔 섭섭하고, 사실 여기엔 숨겨진 배경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로우의 잔인한 실험들은, 우울증 치료를 위한 기초 연구였습니다.

 

 

원숭이 엄마인형 실험 발표 이후, 할로우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됩니다.

 

그리고 할로우는 명성을 유지하고자, 계속해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압박감은, 1967년, 미국 과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었던, 국가 과학상 (National Medal of Science)상을 받으며 국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같은 해 아내가 암까지 걸리자 할로우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증세는 점점 더 심해져 수면제로 자살 시도하다 2차례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이듬해, 정신병동에 2달간 입원까지 하게 됩니다.

 

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며, 할로우는 우울증이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그에반해 병원의 치료법은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당시 항우울제는 효능에 비해 부작용이 심했고, 전기경련요법(ECT)처럼 새로 도입된 치료법은 효과 검증이 부족하
던 때였습니다.

 

 

 

이에 할로우는 자신이 집적 우울증 치료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우울증 치료법 실험하려면 먼저 우울증에 걸린 실험동물이 필요했고, 결론적으로 절망이 구덩이라는 원숭이 실험은, 사회적 접촉을 차단함으로 써, 원숭이가 우울증에 걸리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울증 환자가 된 원숭이들을 확보하게 되자, 할로우는 이들을 치료하는 시험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생후 3개월의 어린 원숭이를 치료사로 붙여주는 것 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원숭이를 사용한 건 어리기 때문에, 크게 공격성이 없고, 비슷한 또래 원숭이를 쓰면 괴롭 당하기 때문에, 어미에게서 떨어지면, 어미 대신 주변의 다른 원숭이를 안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는데, 우울증에 걸린 원숭이가 계속 거부 했음에도, 어린 원숭이는 끊임없이 안아주었고 같이 놀자고 졸라 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 원숭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였고, 같이 놀기 시작했으며, 6개월이 지나자 정상적인 원숭이와 동일한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러한 회복은 가장 잔인했던 실험에서도 나타났는데, 강제로 임신해 새끼를 돌보지 않았던 어미가 새끼를 철처하게 무시했음에도, 새끼들은 어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끈질기게 어미에게 달라붙고 애정을 구걸했는데, 그렇게 약 4주가 지나자 어미는 결국 새끼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새끼를 안아주고 정상적인 어미들처럼 새끼를 돌봤고, 새끼의 끈질긴 노력이 어미의 모성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실험이 상당히 비윤리적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 끔직한 점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생각하며, 관계의 단절과 고립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그렇게 망가진 사회성이 누군가의 따뜻한 포옹과 손길로 회복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지자, 인형을 엄마처럼 달라붙는 새끼 원숭이처럼, 사람도 무언가 대체제를 통해 그 허전함을 채우고 싶어하는게 아닐지, 그만큼 관계의 욕구는 중요하고 강력한 것 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할로우 본인도 실험의 잔인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치료법 개발을 위해선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며,

 

"몇몇 실험은 잔인한 면이 있지만, 10마리 원숭이의 희생으로 100만명의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원숭이를 성공적으로 재활시켰습니다. 이 기술들은 인간에게도 적용 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