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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양반 인구 비율은 약 1% 정도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세종실록 111 권 자료를 참고하여 산출된 비율)


조선은 유교의 나라로 유교 사상을 따랐고 문화 및 규율 또한 유교에 밀접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양반이라 하여 특별하게 엄격한 규율 및 문화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조선 중기부터 양반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외세의 침략(임진왜란, 정묘호란 등)과 경신대기근 같은 천재지변으로 나라에 돈이 점차 사라져, 결국 국가가 나서서 양반 자리를 팔았고, 더 나아가 지방 양반들도 돈있는 상인들에게 족보를 사고 팔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도 많이 팔아서 조선 중흥기를 이끈 정조 시기에 양반의 숫자가 무려 40%를 넘기게 됩니다. (정조실록 5권 기록)


중기 이후 양반들은 자신이 뼈대있는 집안의 진정한 양반이란 걸 보여주고 강조하기 위해 엄격한 문화 및 규율을 만들고 집안을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얼마나 심했는지 아예 국가에 나서서 법도와 규율을 생산했으며 순조때 이런 기록들이 많습니다. (순조실록)


남이 하면 나도 한다는 마인드로 인해 양반들이 이런 규율들을 너도 나도 따라하기 시작했으며, 그런 부작용까지 더해져 해괴한 풍습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현대까지 내려오는 엄격한 양반 규율들은 대부분 이때 생겨진 규율들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당시 쌍놈들이 양반인 척 하려고 만든 법도와 규율을 가지고 아직도 조상 대대로 내려온 법도와 규율인 줄 알고 따르고 있는 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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