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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야기/인생이야기

아버지의 참교육

여러이야기 2023. 1.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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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된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나름 성공한 사업가였었고, 청소년 관련하여 선도 업무도 하면서 이것을 계기로 관련된 신문에 칼럼도 기고하고 계셨었다. 물론 현재 어떤 칼럼을 쓰셨는지에 대해선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옛날 일인지라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 신문사에서 기자증 같은 것도 발급 받아서 사용 하셨었던 걸로 기억하며, 그 것을 가지고 당시의 미군부대까지 출입이 가능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친 뒤 저녁이 되고, 미제 스테이크를 사주겠다며 미군부대에 데려 가셨다.

 

당시에 스테이크는 커녕, 삼겹살조차 먹기 힘든 시대였던 만큼, 두꺼운 소고기를 처음 본 난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는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고나자, 아버지께서는 나를 식당 입구에 있던 슬롯머신으로 데려가셨고, 당시 큰 돈이었던 돈 만원을 쥐어주곤, 한 번 해보라고 권하셨다.

 

난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다. 

 

20분을 헤맸을 까? 그저 눈치와 눈대중으로 돈을 넣고는, 레버를 겨우 찾은 뒤 당길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는 처음 받았던 돈의 두배인 2만원을 쥘 수 있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아버지에게 돈을 땃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간이 넉넉하니 더 해보라고 하셨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앉아서 슬롯머신을 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진 것 하나 없이 모두 잃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집에 돌아가자 하셨고, 집에가는 차 안에서 흐뭇한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하셨다.

 

"도박이란 다 이런거다. 도박으론 절대로 돈을 벌 수가 없으니, 지금 이 경험을 잊지 말거라."

 

나는 그제서야 얼마 전, 학교에서 500원짜리 판치기 노름을 하다 선생님에게 걸려서, 학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간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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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겐 비밀로 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어머니가 결국 이야기 하신 걸 깨달았다. 

 

그 후에  도박 같은 건 쳐다 보지도 않고 살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그 일과, 경험들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승승장구 하던 아버지의 회사는 부도가 났고, IMF도 버텨냈던 회사가 고작 사기꾼 하나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던 말이 무색하게, 우리 집은 진짜 부자는 아니었던 건지, 곧바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외국에서 유학중이던 나는 급히 돌아왔고, 그때부터 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매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다시 재기하려 하셨지만, 그 누구도 부도난 히사의 사장을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재기할 기회 조차 만들지 못하셨다.

 

나는 그럼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유학 도중에 돌아왔어도 큰 불만도 없었고, 갑자기 직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어도 그리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 자라서 돈 개념이 거의 없어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금방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렇게 또 다시 몇년이 흘렀고, 나는 결국 깨달았다. 

 

어느 날 모든 열정과 의욕을 잃은 채 망가져 버린 아버지의 책상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경마잡지를 보게 되었고, 돈과 마음의 가난함이 사람을 어디까지 파괴 시키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 책상에는 수십년 전, 미군부대에서 스테이크를 사주시면서, 내게 도박은 얼마나 백해무익하고 멍청한 짓인지에 대해, 몸소 깨닫게 해 주었던 아버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내가 만들어드린 신용카드를 들고, 과천에서 현금서비스 600만원을 인출한 뒤 모두 날리고 와선, 변명만 줄줄이 늘어놓는 불쌍한 영혼만이 있을 뿐 이었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곧 마음과도 직결됨을,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며 욕심 부리지 않는 철학적인 사유도 능히 가능케 하였건만, 그 것의 부재는 욕심에 지배되어 복종하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하며 종국에는 희망마저 앗아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가난을 두려워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눈으로 본 지금 그 것이 사람을 갉아먹고, 가장 총기있고 밝았던 부분만을 골라서 좀 먹어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습지만, 그 스테이크를 먹던 날 보다, 아버지의 경마잡지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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