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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린 딸이 조금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들른 뒤에, 근처 카페에 가서 간단하게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아는척을 하더군요

 

알고보니 제 중학교 동창이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모르겠다고 하면 그 친구가 민망해 할까 싶어서, 기억나는 척 '오랜만이네~' 하고 반가운 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막역한 친구 입니다..

 

그 친구가 잠시 나갔다 오더니 이쁜 '핑크색 봉투' 하나를 들고 제 딸애한테 주더군요

 

이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별거 아니라고 집에서 확인해보면 된다면서 그 앞에서 뜯기도 뭐해서 그저 간단히 안부인사 하고, 명함을 건네 받고 헤어졌습니다.

 

명함에는 어떤 회사의 디자인 사장이 되었더군요.. 엄청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 봉투를 확인했는데, 5만원짜리가 20장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곧바로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제가 결혼한 것도 몰랐고,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몰랐기에 많이 늦었지만 결혼, 돌잔치 축의금 겸 딸 아이 용돈으로 생각하고 받아줬음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화로 솔직하게 말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이렇게 거금을 받을만큼 우리 사이가 친했던 것 같진 않는데, 기억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해서 돈 바로 돌려줄터이니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전화기 너머로 우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시 기억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는데, 친구가 그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13년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다정하고 착하다면서, 그 말에 저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눈물이 많아진 것 같긴 한데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습니다.

 

그 친구가 중학교때 저와 같은 반인 적은 없었고, 중학교 2학년때 갑작스레 이유 모를 따돌림을 당했었는데, 그로인해 정말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고, 학교에 나가는 것이 도살장 끌려가는 소가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친구가 급식실에서 혼자 쓸쓸히 밥을 먹는데, 제가 혼자 밥 먹는 걸 앞에서 기다려 줬다고 합니다. 제 친구들이 밥 다 먹고 먼저 가도, 자기가 다 먹을때 까지 앉아서 기다려주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이제야 조금씩 생각이 나더군요

 

그 친구는 도서실 위원이었고,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도서실에 자주 갔었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가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추천해주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그 친구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혼자 밥먹는 그 친구를 발견해서, 그 당시에 수줍음도 많고 내성적인 저 였지만, 그래도 용기내서 그 앞에서 기다려주던 기억이 났습니다. 

 

통화 너머 다시 이제 기억이 난다고, 이름이 다르고, 얼굴도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전화로 다시 펑펑 울면서 반갑다는 말만 반복 했습니다.

 

그 시절을 잊고 싶어서 고등학교때 개명도 했고, 대학교 졸업 후에 바로 쌍수도 했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도 계속 울고, 저도 울고, 옆에서 보던 딸내미도 '엄마 왜 울어?' 하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딸이 너무 울어서 결국 급하게 전화 끊고, 저녁에 다시 통화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화장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 썼을때도 제가 도와줬다는데 그건 정말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저는 중학교 졸업 이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고등학교도 완전 다른 지역에서 다녔기 때문에, 그 친구를 점점 잊고 살았던 것 같네요.. 너무 미안하더군요

 

그 이후에 제가  SNS 같은 걸 아예 하지 않아서, 계속 저를 보고 싶어서 수소문 했지만, 찾지 못했고 계속 그리운 기억만 간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 카페에서 저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챘고, 정말 그 자리에서 저를 안고 펑펑 울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늘 제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었기에 그런 마음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 돈은 돌려주고 싶다고 했는데, 저한테 준게 아니라 딸 용돈 준거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웃네요

 

저는 그저 절 기억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이 돈은 그 친구가 아직 미혼인지라 결혼할 때 축의금으로 다시 돌려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그 돈에 더 보태서 축의금 시원하게 내자고, 영화같은 일이라면서 자기가 더 좋아라 하면서 이야기 하더군요

 

중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연락이 끊겼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 기분좋고, 그저 감사할 따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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