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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암살도 문화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 역대 대통령이 암살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고, 정치인뿐 아니라 시민 운동의 중심 인물, 스포츠 선수, 연예인 등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암살의 경우 대부분의 암살자도 마지막에는 죽음 이라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스왈드는 잭 루비에 저격 당하고 존 윌크스는 기병대에 피격되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죽지 않고 살아있는 암살자들이 있고, 현재까지 살아있는 미국의 유명한 9명의 암살자들 리스트 입니다. 



클라우딘 론제 (Claudine Longet) - 올림픽 스키선수 암살

캘리포니아 출신의 스키어 스파이더 사비치는, 1968 년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죽음 이었습니다.  

 

1976 년 스파이더는 콜로라도 아스펜의 자택에서 총에 맞아 사망 하였는데,. 현재까지 그의 죽음이 사고 였는지 살인 이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비치를 총으로 쏜것은 클라우딘 론제가  확실 합니다. 앤디 윌리엄스와 결혼 했었던 론제는 이상하게도 총격의 그림자가 따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당한 현장에 있었습니다. 사비치의 경우 론제는 총기를 손에 든 채, 사비치의 시체 옆에 서 있었던 것이 목격 되었고, 그녀가 쏜 것은 틀림 없는 사실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비치에게 총을 보여주고 있을때, 총이 폭발했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사건이 보도 되면서 현지에서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화제는 론제가  당시 사비치와 사귀고 있었는지, 혹은 결별후 죽이기 위해 돌아온 것인지 등이 쟁점이 되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습니았다. 그녀는 지금도 아스펜에 살고 있습니다. 


 

서한 비슈하라 서한(Sirhan Bishara Sirhan) - 로버트 F. 케네디를 암살

1960년은 케네디 가문에게는 최악의 10년 이었습니다. 1963년 달라스에서 JFK가 총탄에 쓰러지고 민주당의 기대는 동생 로버트 케네디에게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버트도 동생의 죽음으로 부터 5년 후, 민주당이 대선을 순조롭게 시작한 직후 암살 되었습니다.

  
암살자 서한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으로, 케네디를 암살할 때  '국가를 위해 실행 했습니다' 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한의 유죄는 확실했고, 음모론자 조차도 그가 혼자 RFK을 쐈다고 생각 했습니다. 물론 제 2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서한은 암살 당시 기억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유죄가 확실한 사건으로 취급하고 1969년 4월 23일, 서한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재도 서한이 생존자 목록에 등장 하고 있는데, 그것은 캘리포니아 주 덕분 이었습니다.

  
1972년 서한의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캘리포니아는 사형제도를 폐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전에 사형을 선고 받은 서한과 찰스 맨슨은 종신형을 받고,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서한은  아직도 가석방을 기대하고 있구요  


 

존 힌클리 주니어 (John Hinckley Jr) - 로널드 레이건 암살 시도

1981년 3월 31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힐튼 호텔 앞에 나올 때 총탄이 들렸습니다. 존 힌클리 주니어가 쏜 6발의 총탄은 순식간에 경찰 두명을 맞추고, 그 후 대통령 보도 담당관의 머리에 맞았습니다.  나머지 총알은 레이건의 왼쪽 폐에 박혔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레이건은 총을 맞은 5번째 현직 대통령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4명의 사람을 중상을 입힌 장본인 존 힌클리 주니어는, 현재 버지니아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총격 후 힌클리는 정신 장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고, 정신 병원에 보내 졌습니다. 이 판결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게 됩니다.

 

2016년에 존 힌클리 주니어는 석방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어머니의 집 반경 80킬로 이내로 행동 범위를 제한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있습니다. 

 

리넷 스퀴키 프롬(Lynette Squeaky Fromme) - 포드 대통령 암살 미수

어린이 만화 캐릭터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스퀴키는 맨슨 패밀리 일당으로, 여배우 샤론 테이트의 살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해도,이 어린 댄서는 컬트 리더에 완전히 세뇌되어 있었습니다. 

 

맨슨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 갔을 때, 그를 쫓아 범죄에 손을 물 들이게 됩니다.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 되었지만, 곧 다시 풀려 나게 되었고, 캘리포니아의 기괴한 컬트 집단과 네오나치 집단과 관련이 있다곤 하여도, 살인의 증거가 불충분 했기에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1975년 가을에 제럴드 포드 대통령 일행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리넷 스퀴키 프롬이 나타나, 장전한 총을 대통령의 가슴에 똑바로 겨누었는데, 다행히 총은 불발 되었습니다.  곧바로 체포된 스퀴키와, 그녀의 변호인단은 '발포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주장했지만, 그녀는 결국 암살 미수로 감옥에 들어가 2009년에 석방 되었습니다. 현재는 뉴욕시에 거주 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사라 제인 무어(Sara Jane Moore) - 포드 대통령 암살 미수

사라 제인 무어의 인상을 볼 때, 딱히 범죄자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쿠키를 구워 주거나, 교회를 위해 기부하고, 주말엔 정원의 잔디를 깎는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만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사람을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스퀴키 포드 암살 시도 후 불과 17일이 지난 뒤, 사라 무어 역시 포드 암살을 시도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녀는 미소를 띄운 채 총을 대통령의 머리를 향해 발포 하였습니다. 총알은 불과 몇 인치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라 제인 무어의 가장 섬뜩한 점은, 암살 직전까지 아주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스퀴키의 경우엔 범행에 이르기까지 컬트교에 빠지거나 환각제를 사용하는 등, 상당히 거친 생활을 하고 있던 반면 사라 제인 무어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혼도 하고, 직장도 있었고, 아마추어 연극을 즐기는 취미생활도 하고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고, 교통 신호를 무시하고 도로를 달리다 교통 위반에 걸린 죄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녀의 유일한 징후라고 하면, 신바이오니즈 해방군(SLA) 이라는 좌익 과격파 조직과 관련된 것 이었는데, 이 조직은 대부호의 딸 패티 허스트의 납치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사라 제인 무어는 약간의 유명인이 되어 있었고,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통령 암살 시도 당시의 일을 이야기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토마스 헤이건 (말콤 엑스의 암살)

토마스 헤이건은 말콤 엑스의 암살범 입니다. 1965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통일기구에서 연설을 하던 시민 운동의 지도자를 사살 하기에 이릅니다.

 

그 당시에 토마스 헤이건만이 살해를 인정 하였지만, 적어도 3명 이상의 다른 사람이 관여하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토마스 헤이건과 함께 감옥에 들어 갔지만, 둘 다 자신이 범행 현장에 있었는지 여부조차 명확하게 기억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토마스 헤이건은 살해 동기를, 말콤 엑스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지도자를 비방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암살을 정당화 하였습니다. 그가 말콤 엑스를 쏜 것을 목격한 군중은, 경찰이 개입하기 전까지 토마스 헤이건을 반 죽음에 이를 만큼 때렸습니다.

 

현재  토마스헤이건은 가석방 되어 직업을 가지고 감옥 밖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서 브레머 - 대통령 후보 암살 미수

미국의 정치인, 조지 월리스는 '지금 여기에서 인종 차별을, 영원히 인종 차별을!' 이라는 인종 차별 주의적 슬로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 대선을 향해, 메릴랜드에서 민주당 예비 선거를 쟁취하는 유력한 후보 였습니다.

  
이미 미시간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있었고, 딥 사우스 (미국 남부의 보수 지역) 이외에도 지지층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딕시 기술자 출신의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릴랜드주 예비 선거 전날 군중 속에서, 아서 브레머가 월러스의 배꼽을 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서 브레머는 굳이 조지 월러스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 었습니다.  


그를 쏜 이유는 닉슨을 죽일 생각 이었는데, 경호가 굉장히 치밀하여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대상을 바꾼 것 이었습니다. 당시 현장 동영상에는 섬뜩한 미소로 군중 속에 자리 잡은 아서 브레머의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

 

눈은 선글라스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영화 '택시 드라이버' 트래비스 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조지 월러스는 목숨을 건졌지만 안타깝게도 하반신 불수가 되었고, 이후 아서 브레머는 정신 분열증을 주장 했지만, 35년 간 감옥에 수감 되었고, 현재 2007년에 석방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코 마틴 듀란 - 클린턴 대통령 암살 미수

프란시스코 마틴 듀란은, 빌 클린턴을 죽이려 했는데, 암살 미수 사건 역사상 가장 비열한 사건의 범인임에 틀림 없습니다. 프란시스코 마틴 듀란은 트렌치 코트에 라이플을 숨기고,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잔디 건너편에서 라이플을 발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창을 깨뜨렸을 뿐 이었습니다.

  
발포 후 듀란은 몇 초 만에 근처에 있던 구경꾼에게 붙잡혔고, 프란시스코 마틴 듀란은 클린턴의 얼굴을 알았음에도, 실제로 저격 당한 인물은 전혀 다른 사람 이었습니다. 정작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 총격으로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프란시스코 마틴 듀란은, 자기는 외계인과 싸우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이 비열한 암살 시도는 곧 전국적으로 조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외계인이 아니라 클린턴을 죽일려고 했다는, 증인이 60명이나 발견 되어, 1995년에 유죄 판결이 내려 졌습니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 존 레논 암살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존 레논을 총으로 살해하여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존 레논 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존 레논을 죽이고 자신도 똑같이 유명 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최악은 그것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 이었습니다.  1980년 12월 8일 채프먼은 맨해튼에 있는 존 레논의 아파트 근처에서 존 레논의 최신 앨범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존 레논과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마치 친한 듯, 지인과 함께 서 있는 사진이 찍혀 있습니다.

  
존 레논이 싸인한 뒤 돌아갔고,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몇 시간 동안 근처를 서성이다, 존 레논이 돌아간 아파트 근처로 다시 가서 매복 후, 다시 나오는 존 레논을 사살 했습니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고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입니다. 현재 이 암살자의 나이는 6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감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가석방 신청의 기각은 거의 연례 행사처럼 되어 있고, 당연하지만 그가 석방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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