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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룡씨는 밤 12시가 되면, 24시간 사우나에 갑니다.
이곳에서 매일 2시간씩 청소를 합니다.
목욕탕 청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신문 보급소로 향합니다.
수백 세대의 아파트에 신문을 돌리는 데 2시간도 걸 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노하우까지 생겼다고 말합니다.
새벽에 신문배달이 끝나면, 아침이 되는데 그러면 떡배달을 하고, 오후에는 학원차를 운전하며,
저녁에는 다시 떡배달을 합니다.
그 사이에 틈이 날 때마다 신문 판촉과 폐지 수집을 해 돈을 벌기도 합니다.
그렇게 20시간 이상, 7개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하루종일 너무 많이 차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까닭의 차 시트가 터져버렸습니다.
밤 9시가 되면 전주에서 군산까지 떡배달을 하며,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잠이 오면 차에서 내려 소리를 치며 잠을 깹니다.
또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싸우나로 출근합니다.
그리고 다시 목욕탕 청소를 시작합니다.
목욕탕 청소를 하기 전 보일러실에서 잠깐 단잠을 청합니다.
아저씨의 하루가 끝난 것입니다.
그렇게 1시간 뒤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다시 떡배달을 시작합니다.
한 달을 기준으로 신문배달 70만 원, 목욕탕 청소 60~80만 원, 학원차 운전 70~80만원, 떡 배달 150만~180만 원 등
하루 에 7개 아르바이트를 해 한 달에 450만 원 정도를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돈 대부분이 빚 갚는데 사용됩니다.
이종룡씨는 10년째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 번 돈으로, 결국 모든 빚을 갚았습니다.
빚을 다 갚고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습니다.
20만 원짜리 월세방을 벗어나 부인과 단둘이 살 수 있는 전세방을 얻는 게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당연히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몸이 남아 날 수가 없었고 결국 2012년에 대장암으로 쓰러진 뒤 2014년 2월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가 빚을 모두 청산한지 불과 5년이 지난 후에 사망한 것이며, 이는 몸을 돌보지 않는 극단적인 노동도 결국 몸에 해롭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애도해 주었습니다.
사실 첫째로 지적되는 원인은 그가 2008년경까지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두번째로 그는 장기간에 걸쳐 식사를 불규칙하게 했습니다. <3억 5000만 원의 전쟁>에 따르면 그는 아르바이트 시작 이후 음 몇년은 쏟아지는 잠을 억제하기 위해 저녁밥도 굶었다고 했습니다.
포만감에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하루 스케줄에는 식사 시간이 따로 없었습니다. 늘 굶거나 급한 대로 밥을 물에 말아서 대충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느라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보다 굶더라도 시간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직장에서 공짜로 주는 커피를 몇 잔씩 들 이키며 빈속을 채우거나, 심지어는 다음 아르바이트를 하러 이동하는 동안 뛰면서 컵라면을 먹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장암은 적은 수면과 관계가 아주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추정만 가능할 뿐, 고인의 아들은 언론이나 출판사에 자세한 언급을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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