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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29일, 한 무리의 조직이 검찰로 압송됩니다.

이들 조직원들 중 한명이, 검찰에 살해 첩보를 한 것이었는데, 1994년 지존파 사건, 1996년 막가파 사건, 그리고 1999년 영원히 묻힐뻔한 사건, 바로 <영웅파>사건이었습니다.

영웅파 두목 이순철은 1967년 9월 생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이순철의 친부는 뚜렷한 직장없이, 도박등으로 모았던 돈을 다 탕진하고, 가정 폭력도 매우 심했습니다.


결국 큰형과 누나는 가출하기에 이릅니다.



 

15살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이순철은, 1989년 소년원 동기 등 7명과, 전남 광양의 한 나이트 클럽에, 술을 마시다가 다른 일행들과, 시비가 붙었고 이내 패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패싸움 도중 이순철은 소지하고 있던 칼로, 상대방 허벅지를 두 차례 찌릅니다. 그런데 찔린 사람이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어 살인죄로 12년형을 받지만, 10년 만에 가석방되어 1999년 나오게 됩니다

 

 

이순철은 출소하자마자, 소년원 출신 동생들과 <영웅>라는 조직을 결성하게 됩니다.

영웅파는 이순철(당시 32세)을 포함하여, 박재범(31), 창종빈(33), 정덕수(30), 원모(31)씨, 유모(30)씨, 곽모(29)씨 이렇게 총 6명이 조직을 이뤘습니다.

 

 

이들은 다른 조직폭력단과 차별성을 둔다며, 청부 폭력과 사설 경호, 보험 사기 등으로 자금을 마련했고, 1999년 8월 대전 서구 도마동의 한 단독주택에 월세로 합숙생활을 시작합니다.


거실과 마당에는 체력단련을 위해 역기와 샌드백 등을 마련했으며

 



마당 바닥에는 1999.9.26이란 날짜와, 조직원들의 이름 끝자리, 범.철.빈.수.식 다섯 글자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에 고가의 차였던, 크라이슬러, 다이너스티 차량을 몰고 다녔습니다.



 

조직원 중의 한명인 정덕수는, 전문대학 생활체육과에 재학하고 있었는데 총학생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서기도 합니다

 

 

또한, 정덕수는 무술 경호 봉사대 회장, 범죄추방 운동본부 기획실장 등의 직함을 갖추며,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은 검거 당시 다량의 무기, 흉기를 집 안에 소지하고 있었고, 다량의 현금, 수표, 13개가 넘는 통장과 미화, 엔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1999년 10월 22일 새벽 5시경 대전 서구 탄방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 영웅파 일당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순철에게는 단란주점 종업원 강정숙(25)이란 동거녀가 있었습니다.

이 술자리에서 조직원 곽종길이 술에 취해 강정숙에게 반말을 섞어가며,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습니다.

 

 

원래 곽종길은 술버릇이 안좋았는데, 이들은 어렸을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 그동안은 이해하면서 지냈지만, 이 날만은 좀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이순철은 '버릇없다'며, 다른 조직원들에게 곽종길을 폭행하도록, 지시했고 집단 폭행을 당한 곽종길은 기절합니다.

 

그 사이 편의점 주인은 신고를 했지만 일당은 기절한 곽종길을 승용차에 싣고 자신들의 합숙소로 데려와 버립니다.


이후 곽종길이 깨고, 나를 죽이지 못하면 너네를 다 죽이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곽종길을, 오전 6시경 야구방망이, 회칼, 쇠망치 등으로 폭행 후 복부를 칼로 찔러 살해합니다.


이때 곽정길과 가장 친했던 유씨에게 먼저 시범을 보이라며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순철은 부하들을 시켜 시신 훼손을 지시합니다. 최대한 흔적을 숨기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회칼을 이용해 욕실에서 뼈와 살을 분리해, 토막을 내고 이빨, 지문까지 없앤 뒤

 

"이를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오를 다지자"

 

라며 사체에서 간을 꺼내 소주 안주로 먹습니다...

 

 

토막, 분리한 시신을 쓰레기 봉투에 나눠 담아, 승용차에 싣고 이날 오후 3시경, 대전시 유성구 성북동 산림욕장 부근에, 3개 구덩이를 파 시체를 암매장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묻힐뻔한 사건은 조직원 중 한명의 제보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1심에서 이순철과 박재범, 창종빈에게 무기징역을, 정덕수에게 25년 징역이 선고됐습니다.

 

 

이후 2심에서는 인육까지 먹은 죄질이, 너무 나빠다며 주동자인 이순철에게 사형을, 나머지 세 명의 양형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거동이 불편해진 창종빈은, 2000년 8월 자살했으며, 이후 대법원이 상고를 최종 기각하여, 이순철 사형, 박재범 무기징역, 정덕수 25년형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나머지 2명은 살인 및 인육 사건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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