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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 167의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그 이후 하버드에 입학하게 됩니다.

 

 

카진스키 가족들 모두, 그의 앞날은 밝은 것임에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당시 하버드에서 카잔스키의 평가는, 따뜻함을 넘어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할 정도 였습니다.

 

 

그런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어느날부터 타인을 거부하며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다 하버드에서 미시간대학교로 학적을 옮긴 뒤, UC버클리에서 조교수로 1968년까지 근무하게 됩니다.

 

 

이후 1972년 그는, 어느 작은 시골마을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멀어진 가족들은 그럼에도 카잔스키의 선택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1985년 즈음, 미국에선 10차례 동안에 폭탄테러가 벌어지게 됩니다.

 

 

23명의 사상자와 수 많은 사람들이 중상을 입게 됩니다.

 

 

폭탄 테러범의 범인은 '시어도어 카잔스키' 였습니다.

 

 

아이큐 167의 고지능의 촉망받던 16살의 하버드생은 어떤 이유로 폭탄 테러범이 되었을까요?

 

시어도어 카잔스키는 16살의 나이로 하버드의 어떤 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카잔스키 본인은 그저 정치적 철학을 토론하는 정도의 모임이라 생각하고 참가를 했습니다.

 

 

당시 하버드의 심리학과 교수였던 헨리 머레이라는 사람이 주도했던 실험이었습니다.

 

 

 

2학년 때부터 카진스키는 미국의 세뇌 프로그램인 MK 울트라 계획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카진스키는 MK울트라를 주도하던 하버드의 심리학자 헨리 머레이가 이끄는 "고의적으로 잔인한 심리 실험" 연구에 강제적으로 참여 당하게 됩니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동료 학생과 개인 철학에 대해 토론할 것이라고 말한 뒤, 개인적인 신념과 열망을 자세히 기술한 에세이를 작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한 뒤 피실험자에게 에세이의 제목을 과소평가하며 에세이의 내용을 사용하여 조롱, 모욕, 멸시하도록 하고 피실험자에게 전극을 꽂은 후 생리적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촬영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었는데, 이 실험은 궁극적으로 3년 동안 지속 되었는데, 매주 누군가가 카진스키를 언어로 학대하고 굴욕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카진스키는 "학문의 일환"으로 이 실험을 200시간동안 하였으며 이는 그의 내면에서 악마적 증오와 분노, 열등 감과 패배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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