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지배계급의 분열 백제의 왕족과 건국세력들은 만주의 부여와 고구려에서 이주해 온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강 유역의 세력과 연합해 백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성이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함락당하면서 이들은 다시 웅진(공주)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수도를 옮겼으니 집권세력에도 변화가 일어나 웅진 주변 세력들이 권력 중추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백제가 한성 탈환을 시도하려 하자 이들의 분열이 가시화 되는데, 귀족세력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충청도 주변과 그 남부 귀족들이 한성 탈환전에 미온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 전쟁은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보는 장사였고, 한성 탈환에 성공하면 수도는 다시 한성으로 옮겨갈 것이고 왕족과 과거의 집권 귀족세력들은 자신의 영토와 권력까지 회복할..

평양에 앞바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왜 소정방의 평양에 상륙하고 평양이 요새라고 했는지, 또 지금 보다 넓은 평야와 더 많은 요하 부근의 강 줄기가 요하와 대릉하 사이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 입니다. 금관가야에 북해 존재 합니다. (김해 윗바다 ~ 양산 앞바다) 왜 가야가 무역의 중심이였는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주 앞바다, 익산 앞바다 존재 이유 입니다. 왜 백제 멸망 당시에 흥수가 대전아래 금산과 장항에서 막으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태조 왕건이 어떻게 나주에 세력을 투사했는지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즘 학계에서 핫한 주제이고 또 이것저것 변경될 수 있으며, 지도도 보면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바로 동성왕 재위 기간에 발생했다던, 북위와 백제 간의 전쟁 입니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전쟁은 484년, 488년, 490년 총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첫 번째 전투에서는 북위가 백제를 격파한 반면, 나머지 전투에서는 북위가 백제에게 크게 패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백제와 북위 간의 전쟁은 베일에 쌓여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건데,. 그래서 과연 이 두 나라 간에 전쟁이 발생 했는지 의문을 품는 시각도 많습니다. 우선 북위가 백제를 침공한 원인 조차도 불분명하고, 이 두 국가가 외교적으로 마찰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도에서도 보다시피 애초에 지정학적으로도 북위와 백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해상으로는 황해가, 육상으로는 고구려가 서로의 진로를 막고 있었던 만큼, 영토 분쟁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