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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1876~1949)

 

다들 아는 임시정부의 수반

말년에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남한에서 안두희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김규식 (1881~1950)

 

임시정부의 거물로 30년대에는 민족 유일당 운동을 진행했던 사람으로, 해방 후 좌우 합작 운동과 남북 협상에 힘을 쏟다, 6.25가 터지자 북한에 납치되어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조소앙 (1887~1958)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균등한 생활을 하게 하자는 것이 삼균주의다."

삼균주의로 역사 교과서에 자주 소개되는 인물로, 임시정부 출신의 거물 중 한 사람 입니다.

김규식처럼 6.25 때 북한에 납치되었고, 이후 북한에서 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하다 단식 중 사망하게 됩니다.

 

 

 

송진우 (1890~1945)

 

3.1운동과 신간회, 동아일보 등의 활동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독립 운동가입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넘치던 한국 민주당에서 그나마 있던 독립 운동가로,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성향이 강하며 온건한 정책을 추진하던 온건파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탁 찬반 논쟁에서 무조건 신탁 반대가 아닌 신중을 주장하다 한현우라는 암살자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지청천 (1888~1957)

 

신흥무관학교-서로군정서-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등을 거친 독립운동가로, 철저한 이승만 지지파로서 군 관련 경험은 많았으나 해방 이후 군 관련 요직에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이후 그럭저럭 살다가 57년 급사하게 됩니다

 

 

 

신익희(1894~1956)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중국 국민당에 머물다가, 이후 임정에 합류해 활동한 독립 운동가 입니다.

해방 후엔 이승만과 뜻을 같이했으나 이후 마찰이 생기고 민주당으로 넘어가 이승만과 대표적인 라이벌이 됩니다.

1956년 선거를 열흘 남기고 유세 운동을 하던 중 뇌출혈로 사망하게 됩니다.

 

 

 

 

안재홍 (1891~1965)

3.1운동-조선일보-조선어학회 등으로 다양하게 일제 치하의 감옥에 9번 들어간 독립 운동가입니다.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며 한민당과 대립하게 되었으나, 6.25 당시 북으로 납치되었고 65년 사망하게 됩니다.

 

 

 

여운형 (1886~1947)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로 유명한 독립 운동가입니다.

원래는 사회주의자란 이유로 미군정이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미군정이 땍땍거리던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질린 나머지 미군정은 여운형과 손을 잡으며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운형의 중도적인 노선은 극좌와 극우가 전부 싫어했고, 그 결과 지속적인 암살 위협을 받다 한지근이란 암살자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조봉암 (1898~1959)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입니다.

비타협적이던 박헌영과 대립하다 공산당을 탈퇴했고, 해방 이후엔 토지개혁을 주도하다 6.25 전쟁때 납북 당할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나게 됩니다.

이후 이승만과 대립각을 세우다 자유당과 이승만의 경계를 받았으며, 결국 1959년 간첩으로 조작당해 사망하게 됩니다.(진보당 사건).

 

 

 

장건상 (1882~1974)

고려공산당-민족혁명당-임시정부 출신의 독립운동가입니다.

해방 이후 꾸준히 혁신 정치 세력에 남아 활동했으며, 진보정당 참여의 이력으로 이승만에게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게 됩니다. 이후 가난에 찌들어 어렵게 살다가 74년 사망하게 됩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강점기 때 죽을 고생을 하다가, 정치적 분쟁 / 납북으로 비참하게 죽은걸 보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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