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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어진문화는 매우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멸망과 함께 수난을 겪게 됩니다. 고려 임금들의 영정을 폐기하는데 제일 적극적인 왕은 세종이었습니다.


1426년(세종 8년) 고려멸망 후 도화원이 간수하고 있던 고려 역대 군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불태우게 됩니다. 태조 왕건의 비인 신성왕후의 반신 초상화도 불살라버렸습니다.


1428년(세종 10년) 충청도 천안군이 소장한 고려 태조의 진영과, 문의현(충북 청원)이 갖고 있는 태조의 진영과 쇠로 만든 주물상 및 공신들의 영정들을 모두 각각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전라도 나주가 소장한 고려 2대왕 혜종의 진영과 조각상, 그리고 전라도 광주에 있던 태조 왕건의 진영도 개성으로 옮겨 능 곁에 묻게 됩니다.


1433년(세종 15년) 세종은 고려 역대 임금 18명의 어진이 마전현(경기 연천 미산면)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마전현의 정갈한 땅에 묻으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437년(세종 19년)에는 경기 안성군 청룡사에 봉안돼있던 공양왕의 어진을 고양현의 무덤 근처에 있던 암자로 이장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세종은 고려 역대임금들의 초상화를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이른바 ‘분진갱영'(焚眞影' 정책을 실시한 것이 됩니다.

 

세종은 왜, 고려 임금들의 어진을 보는 족족 불태우거나, 묻어버렸을까...


무엇보다 어진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왕조를 상징한다고 봤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색출작업까지 해서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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