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가 경험했던 북한 이야기

대한민국 축구선수였던 홍명보는 1990년 북한과의 통일축구대회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분단 이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북한에 방문하여 경기를 가진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북한 원정은 요즘에도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지만, 199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상, 당시에는 평양 원정을 치르기 전에, 안기부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도 무서웠겠지만, 당시 안기부의 명성 또한 대단하였으니, 홍명보는 안기부에서 교육 받았을때 머리끝이 쭈볏쭈볏 섰다고 회고하며, 안기부 직원은 선수들에게 도청에 유의할 것을 특별히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대표팀의 숙소는 고려호텔로 정해졌는데, 홍명보는 안기부에서 교육에도 불구하고, 도청에 대해 설마 그런일이 있을까 하여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이내 곧 그 직원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홍명보는 숙소에서 무심결에 베게가 높다고 불평을 한 뒤 식사를 하러 나갔는데, 식사가 끝난 이후 복귀해서 보니, 낮은 베게로 바뀌어 있었다고 합니다.

홍명보와 한국 선수단은 이에 굉장히 섬뜩한 느낌을 느꼈다고 하며, 이후로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때는 TV를 크게 틀어놓고 하였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도청을 역이용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방을 잠시 비울때마다 북한쪽 사람들이 청소를 해놓는 바람에 불편을 느끼던 그들은, 일부러 '여기는 방을 너무 자주 청소해' 라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은 역효과를 낳았는데, 이런 불평이 들리자 북한쪽에서 2~3일동안 아예 방청소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양에서 열린 이 시합은, 1:2로 우리 대표팀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는데, 당시 선제골을 넣었던 김주성의 회고에 따르면..
전반 25분 대한민국 대표팀이 한골을 넣은 이후에는 사실상 우리 대표팀은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주성은 좀 더 적나라하게 사실상 골문을 열어줬다고 표현하기도 함)
이것을 보고 혹시 패배한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이 괜히 변명을 하는게 아닌가 싶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이 경기에서 심판은 '북한인' 이었고, 이미 북한이 이기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입니다.
시합은 경기 막판까지 1:1 이었으나, 북한인 주심은 북한이 골을 넣을때까지 '김일성 타임'을 적용하였고, 결국 추가시간 8분경 북한에게 PK를 주고 북한이 이를 성공시키자 경기를 끝내버렸습니다.

홍명보에 회고에 의하면,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그는 두 번의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능라도 경기장에 들어찬 15만명의 관중이 시합이 종료된지 20분이 채 안되어, 깨끗이 빠져나간 것을 보고 '사회주의 집단화'의 무서움을 실감했다고 하며..
두번째는 그에게 보다 더 등골오싹한 경험으로서, 8시 30분에 출발하는 기차가 2분 일찍 출발하였고, 부랴부랴 홍명보가 올라타려 할때 지도원이 그의 허리춤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는것 입니다.
천만다행으로 그 장면을 본 북한쪽 선수가 뿌리쳐줘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는데, 그로인해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남자인 홍명보 역시 식은땀이 절로 났다고 하며..
훗날 그의 자서전에 그때 어쩌면 자신의 북한 축구대표팀으로 뛰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다는 이야기를 써 놓기도 합니다.
황선홍 역시 이때 홍명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습니다.